벚꽃도 모자라 이제 샴푸향으로까지 연금을 받게 됐다는 그 분의 노래들처럼. 산에 들에 피는 꽃만 보면, 코 끝을 스치는 봄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바로 그 장면, 그 이야기.
2021년 3월 월간 안전가옥의 주제는 '봄에 생각나는 그 콘텐츠' 입니다.
봄을 떠올리면 떨어지는 꽃잎에 마음이 흔들리기 보다는 푸른 빛이 도는 나무가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느낌이 반가운 나이가 되버렸다. 최근에 안전가옥 멤버들과 밥을 먹는데, 우리 바로 옆 창가로 벚꽃잎이 흩날렸고 모두 잠시 일시정지한 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다들 좋다고 한마디 씩 할 때 솔직히 나는 아무 감흥이 없었다. 그걸 보며, 아 발밑에 물이 흘렀으면 술잔을 띄우기 좋겠다 싶긴 했다. (난 어쩌나 이렇게 낭만을 잃었나…) 한 땐, 봄이 오면 수업도 째고 남들이 자주 간다던 여의도 어드메 벚꽃 길에 가고 좀 오래 만난 걔랑 사진도 찍긴 했는데 어릴 때부터 살던 동네 등하교길이 벚꽃이 만연해서 였는지 아름다움에 도취되지는 않았더랬다. 그냥 걔가 좋았던 게 전부지, 장소나 시절은 아무 상관도 없는 그런 때였다. 이토록 강렬한 봄의 이미지를 기억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 봄의 사운드를 소환해본다.
‘흩날리는 벚꽃잎이~ ‘의 버스커 버스커의 음악(2012.3)이 대학가를 강타하던 시절에 막 대학을 졸업했던 나는 여수밤바다는 가본 적이 없고, 매년 봄엔 전주국제영화제의 컴컴한 영화관에 있기 일쑤였다. 과제로 봐야하는 어려운 영화들을 졸면서 보고, 저녁엔 막걸리를 마시고, 봄바람에 헛소리를 했던 것이 한 10년인데, 그 시절 보았던 영화들은 하나같이 봄의 풍경을 빌어 지난 사랑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했다. <릴리슈슈의 모든 것> , <허니와 클로버>, <4월 이야기> 등 애니메이션까지 포함하면 우리들의 봄날은 일본으로부터 날아온, 꽤 편향된 이미지를 가진 것 처럼 보인다. 그나마 이와이 슈운지 스타일의 봄 삘을 기억하는 세대라면 옛날 사람 인증이다.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2012), 아이유의 ‘봄 사랑 벚꽃 말고’ (2014) 처럼 세상 모두가 연애가 열광하는 느낌으로 이 노래들만 울려퍼지던 시절도 있었고, ‘박지윤의 봄, 여름 그 사이’ (2012) 처럼 애틋함, 그리움을 노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영화 ‘봄날은 간다’(2001)와 김윤아가 부른 이 영화의 OST는 봄날의 쌉싸름한 맛을 가장 진하게 남긴 영화와 음악이 아닌가 싶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다방에서 만난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가 헤어진 뒤 다시 만나는 장면은 다시 만난다. 벚꽃이 조금 휘날리는 길에서 상우의 옷깃을 여미고 미련이 남은 은수와 상처받은 마음을 돌이킬 길이 없어 다시 화분을 건내는 상우가 별 다른 말 없이 눈으로 서로 굿바이 하는 모습은 카톡으로 헤어지기 일쑤인 요즘과 너무 다른 진함, 징함을 가지고 있다.
영화 <봄날은 간다>은 가버린 봄날을 홀로 맞이하고 있지만, 최근 4억뷰에 도달했다고 하는 BTS의 <봄날> 뮤직비디오는 ‘보고싶다, 보고싶다’ 외치며 거기 좀 기다려 달라고 한다. 뮤직비디오에서도 서사와 세계관을 녹이기로 유명한 BTS 의 뮤직비디오와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 중 어느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까? 결국 향기로든 이미지로든 소리로든 사랑의 기억을 소환하는 것, 그것이 봄이 가진 강력함이 아닐까. 그래서 난 <봄날은 간다>의 마지막 장면을 유지태가 소리를 채취하는 릴의 클로즈업 그리고 그리고 바람 소리를 녹음하는 유지태의 미소로 기억한다. (이것이 봄인지는 모르겠지만..)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레미
"앞으로는 선우정아의 ‘봄처녀’ 처럼 여자가 주인공인 봄날 서사를 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