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arch
🕘

사라지는 나의 아홉을 세며

분류
파트너멤버
작성자
김효인
시간이 빨리 간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들긴 했었지만 요즘은 누가 꿀떡꿀떡 삼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특히나 올해가 들어서는 코로나의 등장이 너무 컸죠. 좁게는 동네에서 넓게는 바다를 건너서 떠돌이의 삶을 살았는데요. 이제는 대문 앞에만 서도 그 발걸음에 부담과 걱정부터 따라붙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벌써 올해의 반을 향해 가네요. 긴 옷들이 장롱 안으로 들어가고 자연스레 반팔을 집어 들게 되니 위기감이 더해져요.
작년까지만 해도 마지막 이십대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을 종종 했었어요. 평소엔 별생각도 없었으면서 '마지막'이라는 말이 괜히 의미를 두고 싶어지잖아요. 십 년에 한 번씩만 찾아오는 '아홉수'라는데 대차게 맞설 마음도 있었고요. 그런데 아홉수까지 코로나에 숨어 버렸을지도요. 이제는 저의 스물아홉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버릴 것 같아 그게 더 무서워요.
아홉은 왜 우리에게 그런 숫자가 되었을까요? 아홉은 십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에요. 한발 부족한, 혹은 모자란 느낌이잖아요. 그래서 언제나 가장 중요한 시기이자 가장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시기로 여겨져요. 찾아보니 문학이나 전설 속에서도 종종 아홉의 의미가 그렇게 쓰이더라고요. 아홉수 역시나 그런 의미에서의 저주(?)같은 걸까요? 순탄치 않은 모든 아홉살을 뜻하잖아요.
대표적인 아홉수에 속하는 나이는 열아홉인데요. 사실 저의 열아홉은 그렇지는 않았어요. 허리를 다치면서 야자를 빠지고 치료를 위해 병원을 왔다 갔다하는 시기기는 했죠. 그런데 처음에나 다른 친구들에 비해 뒤처지는 것이 불안하고 무서웠지 뒤로 가서는 아무 생각이 없어서 더 평온했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대학을 못 가면 뭐 하고 살지나 천천히 생각해볼까 했죠. 꾸준히 운동하고 밥도 잘 먹어서 오히려 살이 포동포동 올랐어요.
'한 발 부족한, 혹은 모자란 느낌'이라면 오히려 그 후에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의 20대는 뭐랄까... 내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몇 번이고 증명받는 과정이었거든요. 성공, 실패 같은 것들도 명쾌하게 100프로가 없다고 할까요. '위기'는 있는데 완벽한 '절정', '결말'이 없었어요.
불안함이 사라지면 또 뭐가 하나 부족하고, 이게 채워지면 다른 게 눈에 보이는 게 끝이 없었어요. 뭐 언젠가 대찬 절정을 맞게 될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도 완벽한 결말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쩌면 '조금만 더'라는 생각이 들었던 저의 모든 시간은 이미 아홉수였네요.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덜 슬픈 것 같기도...)
어차피 이 오랜 아홉수를 끝낼 수도 없겠지만 이제는 크게 탈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는 않아요. 삶의 모양이 완전하지 않다고 해서 온전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냥 앞으로도 끊임없이 생기고 또 사라져 가는 저의 작고 큰 아홉을 세며 나아가는 것에 의의를 두겠습니다.
이 글을 수정하는 오늘은 의도치 않게 29일이네요. 또 하나의 아홉이여 안녕!
+ 글을 쓰면서 제일 먼저 밴드 '9와 숫자들' 이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지금 노래를 듣고 있는데요. 저는 특히나 '유예'라는 곡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야기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함께 올립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김효인
"마감에 있어서는 유예가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짐) 그럼 모두 메리 크리스하우스...(갑자기 분위기 제목 스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