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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과 완성, <고수>와 <베르세르크>

분류
운영멤버
스토리PD
작성자
테오 Teo

완결, 웹툰 <고수>

지난 5월 초에 네이버 웹툰의 대표적인 무협 웹툰 <고수>가 완결되었습니다. 문정후 작가와 류기운 작가가 후기에 밝힌 것처럼 2015년에 시작되어 5년 8개월 만에 완결이 된 것인데 중간에 긴 휴재기를 제외하더라도 4년 이상의 긴 여정 끝에 무사히 그리고 내용적으로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물론 후반부에 무리한 설정 및 과도한 액션 위주의 컷과 왕도물의 숙명과도 같은 파워 인플레라는 문제점도 있었으나 사부님의 복수라는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역경을 극복하고 평화를 찾아간 주인공인 강룡의 서사는 말 그대로 ‘완결’, 그러니까 끝맺음이 아주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여러 조연 인물 중, 검귀 소진홍의 결말에 특히 눈길이 갑니다. 주인공도 정체성의 혼란에 겪지만, 소진홍이란 인물에게 있어 정체성은 그야말로 버리고 싶은 것, 잊고 싶은 것,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걸 어떻게든 확인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매 순간 정말 끝도 없이 ‘내가 정말 나인지’ 물으며 살아가야 하는 인물이었는데, 그를 위해 따로 준비된 에피소드는 정말 감탄했고 마땅한 마무리였기에 (물론 아쉬움도 있지만) 이야기의 끝을 잘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많고 많은 웹툰 작품 중에서 <고수>만이 가진 의의가 있다면, 일단 출판만화와 웹툰, 두 분야를 이어가며 작품을 성공시킨 것에 있습니다. <용비불패>로 한국 출판만화에 있어 엄청난 성공을 거둔 문정후‧류기운 콤비가 몇 번의 부침 속에서도 결국 용비불패 세계관을 더욱 확장해 90년대부터 만화를 보던 세대와 지금 2021년에 웹툰을 보는 세대가 감동을 함께 이야기하는 장을 만든 것이지요.
그다음으로는 웹툰이란 형식에 ‘무협’이란 장르가 더욱 다양하게 그러면서도 탄탄하게 안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웹소설계에서는 무협이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지만 오리지널 스토리로 웹툰 영역에서 무협은 큰 반향이 없었는데 <고수>가 그 길을 제대로 열어준 것이지요. 무협은 그 원류를 따지면 사마천의 《사기》 중 <자객 열전>까지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장르이고 대부분 장르의 기원이 서양에서 시작된 것에 비해 동양, 동아시아 자체의 장르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무협입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애정하는 장르인데 앞으로 더 발전 가능성도 큰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완결이 잘 되면 다음 작품도 자연스럽게 기대가 높아지고, 더욱 커진 세계관에 따라 더욱 멋있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기를 희망하며 그동안의 고된 작업을 계속해오신 작가님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미완결, 그러나 완성된 <베르세르크>

얼마 전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만화 <베르세르크>의 작가, 미우라 켄타로가 급성 대동맥 박리로 인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54년 평생 독신으로 살며 30년 동안 하나의 작품을 위해 그의 모든 시간을 바쳐 그림을 그리던 그가 그렇게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건 일본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의 일개 독자에 불과한 저에게도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습니다.
팬들이 자주 농담으로 ‘얼마든지 휴재를 해도 좋다, 그저 <베르세르크> 완결될 때까지 살아달라’라는 코멘트를 했었는데 결국 <베르세르크>는 완결되지 못한 채 그의 유작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그는 생전에 오로지 <베르세르크> 완결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 열중해왔던 그였기에 아마도 엔딩에 대한 스토리가 준비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공식적으로 미완결이 되었기에 생각할수록 안타까울 뿐입니다.
<베르세르크>는 보통 일본 만화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의 작화 디테일과 극한에 다다른 스케일로 주목을 받고 상찬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품 한화, 거의 모든 장면마다 퀄리티가 매우 높고 작업량이 많다 보니 자주 연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 때문에 연재 자체가 느려 작품을 시작한 지 30년 동안 단행본으로 40권밖에 출간되지 못했지만, 그리고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 이제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베르세르크>는 이야기적으로 완성된 작품이라고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일종의 프롤로그라고 할 수 있지만 수많은 인물이 얽히고 얽히며 모든 복선과 인과 관계가 주인공 가츠가 맞이해야 하는 정말 잔인하고 비극적인 운명으로 몰아가게 하는 역대급 과거편 ‘황금시대 편’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시련 속에서 숙적의 강림을 지켜보게 하는 ‘단죄 편’, 가츠가 운명을 받아들이고,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동료를 맞이하며 천천히 나아가는 ‘천년 제국의 매 편’ 등 모든 편과 장이 “인간이 운명에 대항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의식을 아주 강렬하게 표현해내고 있었습니다.
미우라 켄타로 라는 만화가 아니 장인이 그리고 예술가가 그야말로 그의 모든 걸 갈아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었기에 비록 이 이야기의 끝맺음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거의 모든 장면과 에피소드가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건 그냥 저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부디 미우라 켄타로 작가가 그곳에서도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도록.
RIP. Miura Kentarou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테오
"완결과 미완 사이의 고된 여정을 묵묵히 걷고 있는 모든 창작자들이 소진되지 않기를 그리고 언제나 완성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