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건 딱 질색이다. 일단 추우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남들보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기도 하고. 지금도 난로에 방석에 히터까지 무장을 한 상태이다. 아무래도 새벽은 더 추우니까.
옷이 무거워지는 것도 싫다. 히트텍 위에 긴팔티를 입고 후드티를 입은 다음에 후리스를 입고 롱패딩을 걸친 다음에 출근했다. 롱패딩이 아무리 가벼워봐야 롱패딩은 롱패딩이다. 하필 또 흰색이라 눈사람 돼서 곧 굴러다니기 일보 직전이다.
추워지기 시작하면 또 한 해를 보내야한다. 겨울이 되면 자동적으로 올해 뭘 했나 돌아보게 되고 내년엔 뭘 해야할지 고민해야한다. 대부분은 한 해는 후회로 끝나며 맞이할 새해는 막막하기만 하다. 올해라고 별다를건 없었다.
“눈 감으면 뭐가 보여?”
“아무것도 안 보여.”
“그게 네 미래야.”
같은 삶의 연속이다. 이십대 초반에는 눈 감으면 캄캄한게 내 미래같다고 해도 나름대로 즐거웠다. 하루하루 열심히, 재밌게 살다보면 뭔가 되어있겠지. 내년이면 빼도박도 못하는 이십대 후반이다. 누군가는 아직 어리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취업해서 사회생활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는 나이이다. 정해놓은 길이 아닌 예측 불가능한 삶을 선택한건 난데 누구를 탓할까.
성공한 사람 중에 부정적인 사람은 없다는 말을 되새겨본다. 꼴에 성공하고 싶기에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하다가도 그런건 너무 대가리 꽃밭인 생각 아닌가 싶다. 머릿속은 언제나 전쟁 중이다. 대가리에 꽃을 심으려는 쪽과 제초제를 뿌리는 쪽. 무한한 긍정에 면역이 없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은 실패했을때의 가능성을 염두해두라는 평정심에게 저지당한다.
물론 한 해를 잘 보냈다면 이런 결론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올 해도 열심히 살았다. 내년에도 열심히 살아야지. 열심히 살지 않더라도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야지 했을 것이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이미 저질렀던 실수의 반복일 뿐이었다. 내년엔 그러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반복되는 실수는 실수가 아니라 나라는 인간이 그래먹은거 아닌가 싶고.
한 해의 끝자락에서 이번 달을 돌아보고 올 해 전체를 돌아보는 일이 조금 버겁다. 뒤돌아보면 결국엔 후회와 원망 뿐이다. 그러니까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야한다. 멀리 내다봐야할 필요도 없다. 딱 눈에 보이는만큼만, 한 걸음 한 걸음 어떻게 밟아야 넘어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고민은 오늘 저녁 식사로 뭐가 좋을지 정도로만, 날이 추우니까 뜨끈하게 마라탕을 먹을까 간단하게 김밥 한 줄 먹을까, 딱 그 정도로만.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최수진
"과연 다음 달에 연말정산 - 희망편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