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식기세척기를 구입했어요. 여러 집안일 중에서도 설거지는 딱히 싫어하지 않는 편이라 큰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점점 비중이 커져가는 육아 부담과 바빠지는 일정 등 여러가지 사유가 겹쳐 결국 구입을 결정하게 되었죠.
일단 주방에 설치해놓고 나니 정말 몸과 마음이 편해져요. 하루 한 번 적당히 그릇을 쌓아두기만 하면 설거지 문제가 해결되니까요. 대형 제품은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스마트폰 한 대 가격으로 하루 20분을 절약한다고 생각하면 가성비로서는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백색 가전만큼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은 지출이 없답니다. 내 삶을 바꾸는 소비! )
성능을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간단히 리뷰하자면, 몇몇 분들의 우려와 달리 복잡하게 생긴 컵과 그릇들도 의외로 깨끗이 처리됩니다.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스팀 살균과 건조까지 자동으로 이루어지고요. 빨간 돼지고기 기름이 잔뜩 눌러붙은 프라이팬이 뽀득뽀득해지는 기적을 목도하고나면 정말이지 없던 신앙도 생겨날 정도라니까요. 여러분 특이점은 옵니다! 기계신께서 정복하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으으음, 그런데 사소한 문제가 생겼어요. 이제는 그릇을 쌓는 것 마저도 슬금슬금 귀찮아지기 시작했다는 거죠. 정말 놀랍지 않나요? 게으름이 가진 포텐셜이란... 어쩌면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예요. 예전에도 빨래 건조기를 사고 나면 바삭하게 말린 빨래를 즐거운 마음으로 차곡차곡 정리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냥 이틀 동안 건조기 통안에 방치하게 되더라고요. 빨래 접어주는 기계가 나온다는 소식에 혹하기나 하고.
뜬금없지만 저는 노동의 신성성을 이야기하는 말들을 싫어해요. 모두가 공평하게 할 일을 나눠갖자는 식의 발상은 반드시 실패로 끝날 거라 믿어요. 사람들은 다들 일을 하기 싫어하니까요. 사람들은 일이 하기 싫어서 돈을 좇고, 일하지 않고 살고싶다는 바로 그 욕망을 연료로 자본주의라는 괴물이 굴러가죠. 일해야 한다는 주장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수 없어요. 그래서 세상의 혁명은 대부분 대신 일해줄 누군가를 권력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으로 파국을 맞이하게 되죠.
어쩌면 누구도 일을 하지 않고 모두가 공평하게 한량처럼 놀 수 있게 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혁명의 시대가 찾아오는 게 아닐지. 그리고 그 미래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닐지.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이경희
"세탁기와 건조기를 합친 올인원 제품은 왜 나오지 않을까. 솔직히 만들수 있을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