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말연시는 조촐하게 집에서 보냈습니다. 동네 카페에서 테이크아웃으로 맛있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 와서 마음의 분위기 정도만 냈습니다. 만찬으로는 스테이크를 구워 먹으려고 큰 마음 먹고 소고기도 미리 들여 놓았습니다.
케이크는 정말로 맛있었습니다. 하얀 생크림 위에는 향과 장식을 위한 로즈마리 가지가 송송이 얹혀 있었습니다. 먹을 수 없는 로즈마리를 떼어 내고, 그 향이 짙게 베인 케이크를 조각으로 베어 내자 풍부한 딸기가 안에 가득했습니다.
어려운 시국에 시끌벅적하지는 않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좋은 성탄절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절반 정도만 먼저 먹고, 나머지는 냉장고로 보냈습니다.
2.
소고기 판매처에서 스테이크 레시피를 끼워서 보내 주었습니다. 정석적인 과정이네요. 냉동육을 먼저 해동하고, 다시 찬 기운이 빠지게 상온에 둡니다. 달군 뒤 오일을 두른 팬에 놓고 양면을 돌아가며 굽습니다.
양 면을 1분 씩 구워 초벌구이가 되고 나면 원하는 굽기가 나올 때까지 뒤집어 가며 계속 조리하게 되는데, 레시피에 의하면 이 때 버터, 타임, 로즈마리 등을 팬에 넣어 향미를 더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버터는 있어도 고급 향신료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는걸요. 대체 어느 집 냉장고에 경우도 좋게 로즈마리가 들어 있겠어요?
들어 있었습니다.
조금 전 먹다 남긴 케이크 위에는 여전히 로즈마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거든요. 짖궂은 마음, 알뜰한 마음, 그리고 실험해보고 싶다는 도전 정신이 저를 로즈마리 수확자로 만들었습니다. 사뿐히 떼어내, 크림을 닦아 내고, 팬에 투하했습니다.
덕분에 정말 좋은 향이 배어났습니다. 향신료의 위력이란 놀랍네요. 풍미 좋은 스테이크에 샐러드를 곁들여, 행복한 성탄절 만찬이 되었습니다.
3.
이른바 ‘집에서 간단히 만드는 레시피’ 에 종종 ‘냉장고에 남아도는 아스파라거스’ 라든가 ‘뒤뜰에서 막 뽑아온 바질’ 같은 게 나와서 사람들이 황당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죠. ‘기생충’ 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한우 짜파구리는, 사모님이 레시피를 불러줄 때 라면 종류는 요즘 유행한다는 별미처럼 말하면서 한우 부분은 냉장고에서 대충 꺼내 쓰라는 식으로 불러주기도 했죠.
저희 집 냉장고에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남아도는 로즈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런 대단한 날의 특별한 먹거리가 없이도 대충 냉장고 어딘가에 진귀한 재료가 방치되어 있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그 너머를 살짝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엿보인 풍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많은 돈을 벌어서 그런 삶을 살겠다고 물질적 풍요에 집중하는 방법도 있겠습니다만, 냉장고에서 트러플이 썩어 가는 삶이 뭐 그리 대단한 의미가 있겠어요. 그보다는, 내가 원할 때 내가 원하는 재료가 손 닿는 곳에 있다는 기쁨을, 그로 인해 느낄 수 있는 소금 같은 행복을 좀 더 가까이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시아란
"2021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 해 모쪼록 회복과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