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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독

분류
파트너멤버
작성자
시아란
1.
장편원고에 매달린 지 대략 1년 정도 지났습니다. 본업과 병행하며 하는 작업이다 보니 일과의 일정 부분을 희생하게 되는데요. 주로 쉬는 시간이 사라지지만, 그 밖의 시간에도 어쩔 수 없이 일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이 원고가 끝나면 OO를 할 거야” 로 미뤄 둔 것들 중에는 방 안 정리나 가계부 정리 같은 것들도 있지만… 수많은 책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2.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가장 즐기던 여가생활 중 하나를 아주 내려놓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줄어든 여가 시간 동안 최대한의 투입시간 대비 즐거움을 얻으려 하다 보면, 몇몇 책들은 서가에 놓여 잠시 대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대기하는 책들이라고 멋지지 않은 책은 없어요. 왜냐면 멋지지 않은 책은 집에 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지 조금 차분하게 읽고 싶은 책들이 주로 순서가 밀려나는 편입니다. 좋아하는 작가님의 신작이 실렸거나 굉장한 관심을 끄는 주제로 작업되어서 이건 지금 반드시 읽어야 한다 싶은 뜨거운 책들을 가장 먼저 읽게 됩니다. 그 사이사이에, 독서 호흡이 빠른 만화책들을 틈틈히 빠르게 소비합니다. 아무래도 조금 진지하게 시간을 들여서 읽고 싶거나, 문장을 음미하고 싶은 책들은 우선 내 수중에 넣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3.
시작이 반이라고, 이 “수중에 넣었다” 는 시점에서 이미 책 읽기의 절반 정도는 착수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외치고 싶습니다. 왜냐면 어떤 책은 입수할 수 없어서 읽을 수 없게 된다고요. 책은 절판됩니다. 세월은 흘러갑니다. 책을 읽을 준비가 되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려고 하면, 책은 나를 놔두고 떠나갑니다. 장르소설이나 만화책 종류는 특히 순식간에 서점에서 사라져 버릴지 모르고요.
떠나가 버린 책을 구하려고 동분서주해본 적이 있습니다. 헌책방을 뒤진 적도 있고, 비싸게 중고도서를 산 적도 있습니다. 갖고 계신 분께 사정해서 조심조심 읽고 돌려드린 적도 있습니다. 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잠시 내 옆을 함께 날아가는 정보의 꾸러미 같은 것으로, 손에 닿을 때 붙잡지 않으면 언젠가 궤도를 달리해 저편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4.
이 달에도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고, 그 중 일부를 서둘러 입수했습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정말 행동력이 필요합니다. 텀블벅 펀딩 기간에만 구할 수 있는 책들도 있고, 초판에 정말 놓치기 어려운 특전을 끼워 오는 책도 있습니다. 읽는 순서와 관계 없이 모셔둡니다. 일부는 소설책이 모여 있는 서가의 맨 앞줄로 갑니다. 일부는 침대 머리맡의 협탁 위에서 빠른 소비를 기다립니다.
언젠가 이 모든 책에 손이 닿을 그 날이 오겠지요. 선생님, 원고를 다 마치면 서가에 있는 그 책들에게 인사를 하러 갈게요. 제가 서가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이제 고지가 눈앞이에요. 살아서 돌아가면 삼일 밤낮을 책만 읽으며 즐겁게 보낼 수 있겠죠? 하하하...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시아란
"사실 진정한 “언젠가” 는 이 모든 책들을 고이 수납할 부동산을 얻는 그 날이 될 것입니다. 근교의 별장을 하나 구해서 사람 살 공간 없이 책들만 채워넣고 싶다는 망상을 합니다. 언젠가는 이루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