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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읽습니다

작성자
범유진
분류
파트너멤버
1920년대 지방의 마을 사진이 필요했다. 미친 듯 뒤진 결과, 그 당시 사진을 찍은(주로 경성 위주였지만) 기록물을 찾았다. 한 백년 뒤에 누군가도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을지도 모르겠다. 2019년 한국, 특정한 시골 마을의 울타리 끝은 뾰족한 모양이었는지 네모난 모양이었는지 알아야만 하는데, 쏟아지는 이미지 자료를 아무리 뒤져도 그 자료만 안 나오는 그런 고통. 그걸 생각하면 지금 소소한 것들을 기록하는 누군가는 미래의 누군가에게 희망을 선사해 주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과 비슷한 이유로, 2월 후반부터 3월까지 비자발적 백수 상태였다. 그래서 삼일절 아침, 나는 책장 정리를 하기로 했다. 내 책장은 창고와 방에 하나씩 나누어져 있는데 양쪽의 책을 정기적으로 바꿔 주어야 한다. 안 그러면 창고 쪽 책장에 꽂아놓은 책이 망가질 위험이 있다. 쉬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찬스. 정리를 시작했고, 십년 전 일기장을 발굴해 냈다. 읽었다. 생각보다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았다.
기록은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과거, 누군가에게는 시대를 들여다보는 창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지표가 되어 준다. 개인의 기록은 그렇기에 완전히 개인의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의 기록을 개방할 의무 역시 누구에게든 강요할 수 없다. 그럼에도 오픈하는 사람들이 있다. 타인에게 이정표를 제시해 주기 위한 용기다. 자신의 상처가 녹아낸 기록을 오픈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고민을 나는 감히 가늠할 수가 없다.
나는 타인이 그렇게 남겨놓은 기록을 읽는다. 반드시 나를 울게 만드는 기록들이 있다. 예를 들면 유치원생 아이의 성폭행 사건에서, 판사가 아이가 ‘정상적으로 유치원 생활을 했다’ 는 것을 이유로 아이의 증언을 믿지 않았다는 이야기.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기록은 어느 시대에나 있고, 그걸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나온다. 슬프고도 분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한번은 받게 되는 질문이 있는데 소설 속 이야기는 작가의 경험입니까, 하는 것이다. 초반에 나는 이 질문에 ‘아니요.’ 라고 대답했다. ‘예’라고 대답하면 창 너머에서 누군가 나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기분이 들 것 같아서였다.(작가론적 해석을 안 좋아하는 편이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 역시 누군가를 들여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니 완전히 ‘아니요’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가끔은 내가 읽고 있는 기록을 적고 있을 누군가와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는 상상을 한다. 각자 다른 것을 적다가, 창을 바라보면 서로 눈을 마주치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는 말을 건네고 싶다. 당신의 기록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기록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라고.
나를 몇 번이고 울게 했던 싸움의 기록이 묶여 나왔다. 올 봄은 그 기록을 천천히 읽으며 보낼 것이다. 써 주셔서, 기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범유진
“대한민국 전국 각지의 사투리 시대별 정리서 좀 누가 내주세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