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을 정리하다가 나온 안 쓰는 물건과 피부에 안 맞는 화장품 따위가 잔뜩 모였습니다. 버리기엔 아깝고, 중고 거래로 내보낼 결심을 했습니다. 요새 사람들 많이 쓴다는 지역기반 중고 거래 서비스에 아이디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SNS에 보면 신기하고 기묘한 매물들 이야기가 종종 보이곤 했습니다. 이 서비스는 철저히 지역 기반이라, 멀리 다른 동네의 매물은 볼 수가 없습니다. 이 주변 동네의 매물은 그렇게까지 튀는 물건이 많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드물게 보이는 사연 있어 보이는 물건이라면, 사 놓아도 아이가 거들떠도 안 본다는 이유로 방출된 도서 전집이나, 한 명 앞에서 대량으로 판매 게시물이 올라온 특정 아이돌 그룹 굿즈라든가 하는 것들은 있네요. 간혹 사무실이나 카페 폐업의 흔적인 것처럼 보이는 소품이나 가구가 눈에 띕니다.
2.
파는 쪽이 아니라 사는 쪽으로 말하자면, 저는 중고물품에 그렇게까지 적극적이지는 않습니다. 전자제품이나 공산품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피복이나 침구류는 먼지 내지 알러지 걱정이 앞서고, 소품류는 원하는 디자인과 규격에 딱 맞는 것을 찾아서 신제품 사이에서도 방황을 거듭하는 성격이다 보니 성에 차기가 어렵습니다.
개중 가장 솔깃하면서도 가장 꺼려지는 것은 가구입니다. 좋은 중고 가구를 들이면 저렴하게 인테리어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겉면을 깨끗하게 닦고 단장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내부입니다. 목재가 많이 사용된 가구의 경우, 혹시라도 나뭇결 사이, 합판의 집성목 사이에 끼어 무언가 살아 있는 것이 묻어왔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듭니다.
어쩌면 살아 있지 않은 게 묻어 올지도 모르는 거고요. 원혼이라든가.
3.
중고 제품에 귀신이 붙어 온다는 괴담은 보통 버려진 가구나 인형 따위를 주워 왔더니 거기에 무언가 좋지 않은 귀신이 깃들어 저주를 내리고 각종 불행, 질병, 이상행동의 원인이 된다는 형태입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때, 한 번 사람의 손길을 떠난 물건의 청결과 위생을 담보할 수 없으니, 엔간하면 피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겠죠. 버려진 책상을 가져와서 생기는 불상사는 밤마다 나타나는 죽은 고학생의 원혼보다는 책상 어딘가에 붙어온 알집에서 깨어난 작고 검은 벌레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런 괴담에 대해서는 다분히 세속적인 불만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결국 중고 제품을 집에 들인다는 것은 삶을 경제적으로 꾸리고자 하는 서민들의 행동이기 십상입니다. 없는 형편에 좋은 물건을 합리적인 여건에서 손에 넣어 알뜰하게 삶을 꾸리려고 했을 뿐인데, 귀신이 붙어 와서는 뭐라뭐라 흉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불공평하지 않나요? 같은 순간 돈 많은 사람들은 공장에서 깨끗하게 생산되어 귀신이고 뭐고 안 붙은 신제품을 사다 씁니다. 그리고 귀신이 들 때까지 쓰고는 버리죠. 그걸 서민이 주워다가 괴이현상에 마주치고요. 이게 대체 무슨 영적 빈익빈 부익부란 말인가요. 심지어 물건의 재활용을 방해하여 이 기후위기 시대에 자원 재활용의 측면에서도 심각한 방해가 됩니다. 이는 대단히 옳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귀신 탓을 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그 분들도 저마다의 억울함이 있어 중고 물건에 붙어 계신 것이겠지요. 그리고 사실, 부르조아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비싼 미술품이나 골동품에도 귀신은 붙어 다니곤 합니다. 딱히 귀신 여러분들이 서민만 괴롭히는 계급 순응적 공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그냥 이 세상이 좀 잘못 생겨먹은 탓이죠. 원혼을 낳고, 그 원혼이 흘러 들어가고, 거기서 다시 공포와 원망을 낳고, 그런데 누군가는 그 위험을 그냥 돈으로 회피해 버리는… 아아… 그런 이 세상이 말입니다...
4.
...아무튼, 안 쓰게 된 어깨 안마기와, 향은 좋은데 두피를 뒤집어놓은 샴푸의 미개봉 1+1 증정품을 조만간 중고 시장을 통해 처분할 예정입니다. 바라옵건대 우리 집에서 이상한 귀신 같은 거 붙어 가지 않아서, 사 가시는 분의 가내 평안하시고, 자원낭비 없는 푸른 지구를 하루라도 더 연장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시아란
"중고장터에 애완동물 등 생물은 거래할 수 없다고 하지만, 화분 같은 것은 거래가 되는 모양입니다. 그럼 과연, 위대하고 오래된 옛것이 봉인된 항아리를 올리면 생물거래로서 거래정지가 될까요? 흥미로운 지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