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월간 안전가옥, 운영멤버들은 "2021 나의 포부"를 밝혀봅니다.
놀랍고, 아쉽고, 화도 나고, 다사다난하고 기묘한 2020년. 그리고 그 해를 뒤로 하고 온 2021년 새해. 여러분의 포부는 무엇인가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팬데믹이라는 건 충격이었습니다. 뭐 해봐야 신종플루나 메르스 정도 바이러스겠거니 생각했던 이 바이러스는 전 지구를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으로 밀어넣었고, 1년째 그 기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팬데믹이 비일상인지 아니면 이후의 일상을 새로이 정의할 뉴 노멀인지, 그게 좀 미묘합니다.
대학로의 책방이음, 홍대의 북새통문고, 망원동의 카페홈즈. 팬데믹 기간 문을 닫는(을) 서점들입니다. 오프라인 서점계의 3위 서울문고(반디)와 서적도매업 2위인 송인서적은 회사가 어려워 매각을 추진 중입니다. 듣기로는 교보나 알라딘도 오프 매장의 매출이 크게 빠졌지만 온라인이 이를 벌충해 겨우 유지하는 정도라고 합니다. 그나마 팔리는 책 리스트는, 주식과 부동산으로 쏠렸죠.
영상 쪽도 다르지는 않습니다. 극장은 그야말로 초토화되었고(아예 사업을 접는다더라, 매각한다더라 하는 살벌한 소식까지 들려옵니다) 방송 3사는 모두 드라마 편성을 절반 가까이 줄였습니다. 어려운 시국에 투자자들의 지갑은 굳게 닫혔고 그나마 제작되는 현장은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기 일쑤입니다. 시장에 돈이 돌지 않으니, 약한 쪽부터 무너집니다. 바로 계약직/ 프리랜서들이죠.
그런데 콘텐츠 바닥이 삽시간에 증발해 버린거냐 하면 전혀 또 그렇지 않습니다. 카카오페이지는 홀로 연에 5천억원의 시장을 만들었습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주도하는 우리나라의 웹툰 시장은 조 단위를 넘봅니다. (소매기준 국내 단행본 출판사의 매출이 4천억이 안됩니다) 넷플릭스가 열어젖힌 OTT 시장도 조 단위, 올해에는 디즈니+도 들어온다고 합니다. 작년말엔 쿠팡도 들어왔어요.
어쩌면 코로나19의 팬데믹 시국은 (적어도 콘텐츠 판에서는) 겪지 않아도 될 예외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안그래도 오고 있던 미래를, 그저 굉장히 과격하게 앞당기고 있는 쪽에 가까워보여요. 종이책을 안보고, 스마트폰을 더 오래 들여보는건 사실 이전부터였습니다. 웹소와 웹툰,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콘텐츠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우물쭈물하다간 쓸려나갈지도 몰라요.
안그래도 세상은 변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바뀌고 사람들이 하는 생각과 행동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고 있었죠. 우리가, 안전가옥이 속해있는 소위 ‘콘텐츠 바닥’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처해있는 환경과 기기가 바뀌고 미디어채널이 바뀌고 구독방식이 바뀌고 그 안에 담기는 콘텐츠 역시 바뀌고 있다는 건, 2~3년 전에 이야기했어도 거짓이 아니었을테니까요.
안전가옥이 만드는 콘텐츠와 IP는 출판 간행물에 베이스를 두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매체인 종이책을 만들고, 종이책에 맞는 호흡과 길이의 원고를 창작자들과 함께 만드는 프로듀싱이 안전가옥의 핵심이었죠. 짧은 시간 동안 이 역량을 부지런히 쌓아왔습니다. 2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펴낸 책만 18권에, 그 책에 담긴 이야기는 장단편 포함 50개에 달하니까요.
안전가옥은 처음부터 출판 그 너머의 시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점진적으로 변화할거라 예상했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전선을 넓혀나갈 생각이었죠. 그런데 좀 더 나중에 올 거라 생각했던 판이 일찍 차려지는 느낌입니다. 코로나라는 괴물이 전통적인 판을 완전히 엎어버렸고, 생각보다 크게 요동치며 빠르고 과격하게 변하고 있는 것이- 부족한 제 눈에도 보여요.
특히 새로운 소비자 플랫폼을 중심으로, 시장의 질서가 새로 정립되어갈 듯 합니다. 사람들이 콘텐츠를 보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스마트폰. 이 스마트폰을 장악한 플레이어에게 자본이 쏠리고, 그 자본은 독점적인 콘텐츠를 수급할 수 있는 체계에 다시 쏟아질 거에요. (어려운 말론 후방통합이라고 하죠) 전통적인 콘텐츠는, 사라지진 않겠지만 예의 세력을 회복할 순 없겠죠.
2010년대 초중반 스마트폰이 보급되며 앱과 앱스토어 시장이 처음 생겨날 때를 생각합니다. 그 때만 해도 용산이나 테크노마트에 가서 CD에 담긴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사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무조건 데스크탑을 써야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죠. 그 시장이 여전히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이미 모바일에 그 주도권은 뺏긴지 오래에요.
판에 들어가기, 공룡을 등에 업고.
물론 모든 기능들이 바뀌고 뾰족해져야 할 겁니다. 창작자를 찾는 일도, 이야기를 기획하고 프로듀싱하는 것도, 만들어진 이야기를 유통하고 관리하는 것 모두 말이죠. 그런데 대표로서 제가 좀 더 잘해내야 하는, 그리고 더 집중하고 싶은 일이 또 있습니다. 덩치를 키우고, 다른 회사와 굵직한 제휴를 해내는 것입니다. 소위 콥뎁(CorpDev)이라 불리는 기업전략에 대한 일이죠.
지금까지의 안전가옥이 기반을 다지는 작업을 해왔다면, 2021년에는 그 기반 위에 비즈니스를 본격적으로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혼자 묵묵히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지금의 격랑을 이겨내기 어렵겠다는 판단이에요. 덩치를 키우고, 빠르게 제휴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이란 거대한 비전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며 스케일을 키워가는 조직이니까요.
구체적으로 포부를 이야기해보자면, 투자를 유치해서 본격적으로 덩치를 키워보려고 합니다. 가능하면 그 자본이 안전가옥이 들어가고자 하는 새로운 판에 영향력이 있는 전략적인 자본이었으면 더 좋겠죠. 그 과정에서 안전가옥의 비전과 실행력이 인정받았으면 좋겠고, (맘속으로 목표하고 있는) 소기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와 운영멤버들은 더 큰 베팅을 할 수 있게 되겠죠.
안전가옥과 함께 창작자들이 만든 이야기를 더 다양한 매체로 만들고 싶습니다. 동시에 더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더 큰 파트너와 제휴해서 더 많은 소비자를 만나게 하고 싶어요.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고, 더 넓은 시장에서의 수익을 창작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획하고 만드는 곳을 넘어, 실질적인 비즈니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안전가옥이 새로운 판에서 스토리 IP로 비즈니스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레퍼런스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뭐 당장 올해는 아니더라도, 저희가 하나의 새로운 모델이 되어 업계에 자리잡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결과로 제 2의 안전가옥이랄까요 그런 곳들도 등장하고, 안전가옥의 사업모델을 분석하는 증권가 뉴스나 리포트도 나올 수 있다면, 그것도 또 재미있겠네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뤽
"개인적으로는 반대로, 덩치를 좀 줄여야 할 것 같긴 해요. 요새 넘 몸이 무거워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