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면 역시 에세이도 잘 써야지! 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어요. 아주 오래전에 시작된 생각이에요. 그 때만 해도 전 제가 작가가 될 줄 몰랐고, 심지어 소설이 아닌 다른 어떤 이야기를 써야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생각해보니 어릴 때도 상상력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제 자리는 교실 벽에 붙박이장처럼 붙어 있는 책장 옆이었거든요. 그때는 새학기가 되면 다들 집에서 책을 한 권씩 가져와 학급문고를 채우던 시절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그랬던 것 같아요. 그 후로는 책 가져오란 얘기를 안 하더라고요.
아무튼, 어느 날은 수업에 집중이 안 되니까 괜히 선생님 몰래 책장을 흘끔거렸는데, 책 한 권이 눈에 띄더라고요. <하루키의 여행법>이라는 제목의 책이었어요.
쉬는 시간에 몇 장 넘겨봤는데, 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 몰래 책을 읽었어요. 그 후 한동안은 하루키의 책을 열심히 사다 모았던 것 같아요. 한 칠팔 년쯤? 처음엔 에세이 위주로 읽었고, 그 다음엔 단편, 마지막이 장편이었어요. 일종의 덕질 이었던 거죠. 하루키 다음에는 파울로 코엘료와 폴 오스터의 책을 모았고, 그 다음에는 오르한 파묵과 스티븐 킹이었어요.
뭐든지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 첫 덕질 대상이었던 하루키 때문에 전 작가에 대한 이상한 환상을 가지게 되었어요. 진짜에요, 이게 다 하루키 때문이라니까요.
“작가라면(정확히는 소설가지만요) 픽션도 논픽션도 재밌게 써야지! 읽으면 크!!!! 이런 거 있잖아!”
그 후엔 어딘가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모든 작가들이 다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어요. 신문이든, 웹진이든, 잡지든. 유명세의 척도는 에세이를 기고하는가, 아닌가에서 갈린다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지금도 그 생각을 완전히 떨치진 못했어요. 선후 관계야 어찌 되었든, 촘촘하게 만들어낸 소설이 아니라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결국, 제가 흠모하는 멋진 작가에 대한 환상은 여전한 셈이네요.
그러니 이쯤에서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제가 흠모하던 그런 멋진 작가는 못 될 것 같아요. 지금 이 글을 쓰는 게 장편소설을 쓰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니까요. 유머와 위트는 반쯤 타고나야 하는 거라는데, 전 아무래도 틀려먹은 모양이에요.
그러니 매번 바라던 “크!!!!”하는 이야기는 타고난 분들에게 맡겨두고, 저는 이만 마감의 세계로 떠나려고 합니다.
음, 그래도 다음 달엔 뭔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이재인
“이 글의 마지막 문단을 쓰고 있을 때 쯤, 모 작가님께서 다음 달에 쓸 소재를 추천해주셨어요. 세상에! 더 빨리 수다를 떨었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