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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irl at the end of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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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생 때 사진부에 있었습니다. 필름 사진을 중심이었는데 필름과 사진을 현상할 수 있는 암실도 따로 있을 만큼 제법 본격적인 곳이었죠. 컴컴한 암실의 붉은 빛 아래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필름이 든 깡통을 흔들거나 필름 입자를 살피면서 투영기 레버를 돌리던 기억이 나네요. 제법 낡은 건물에서 창문도 없는 곳이었다보니 조금 으스스한 분위기도 있는데 그래서 장난 삼아 공포 영화나 찍어볼까 했던 적도 있어요. 결국 찍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사진을 좋아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주로 정물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인물을 찍게 되었지요. 사진부에선 매년 2번 정도 사진전을 했는데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아는 사람에게 직접 부탁해 모델로 세우고 사진을 찍기도 했고요.
졸업을 하고 대학원에 가서도 사진으로 놀고 싶었는데 함께 할 사람이 없었어요. 게다가 암실을 쓰지 못하면 필름 카메라는 꺼낼 일도 없어지고. 가끔 현상소에 가서 현상을 해오기는 했는데 인화지를 고르는 단계부터 직접 손으로 사진을 굽는(일본식표현) 것과는 다르니까요. 직접 손으로 사진을 구워주는 곳도 있었지만 그런덴 너무 비싸고. 그렇게 사진 취미는 옅어져 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사람 사진이 찍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페이스북에 썼죠. 사람 사진을 찍고 싶다고. 그랬더니 학부생 시절 같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지인이 좋아요를 누르는 게 아니겠어요. 그 지인과는 오직 가게에서 같은 시간에 일을 할 때만 만났고 대화도 그리 많이 나눈 적이 없었어요. 근데 그냥 사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어요. 반쯤 농담으로. 왜냐하면 고속버스로도 10시간이 걸리는 거리거든요. 근데 그 지인이 ㅇㅋ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별 거 아닌 걸로 뜬금 없이 시작되는 일이라는 게 가지는 매력이라는 게 있지요. 그래서 정말 하기로 했습니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 시작된 것도 아니지만요.
그 지인과는 여전히 높임말을 썼어요. 지금도 그렇고. 그만큼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오히려 적당한 거리감이 있어 좋았던 것 같아요.
이게 2012년입니다. 아쉽게도 이때 사진은 별로 남아있지 않아요. 사진 관리가 로컬에서 클라우드로 좀 왔다갔다하던 시기라서 도중에 사라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다음해, 2013년에도 갔습니다.
이때 사진은 그나마 좀 남아있는 편이네요. 사진을 애플의 어퍼처라는 앱으로 관리할 때였는데 이건 당시 애플의 기본앱이었던 아이포토와 연계가 되었거든요. 아무튼, 1년을 두고 사진을 찍었으니 이젠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이때 Flickr에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제목을 The girl at the end of summer로 붙였어요. 별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정말 여름의 끝에 찍은 거라서.
다음해에는 가지 못했어요. 좀 바빴죠. 그래서 2015년에 다시 갔습니다.
이때는 제목을 Day before summer로 바꿨어요. 말 그대로, 여름이 시작되기 전이어서. 그때 밖에 시간이 없더라고요. 이때는 사진을 라이트룸으로 관리를 했는데 아직 손을 대지 않은 사진이 제법 있네요. 졸업 직전이라 시간이 없어 한 달에 한 두 장 밖에 편집을 못하는데 어도비는 자비 없이 요금을 징수해서 결국 라이트룸 구독을 끊었던 것 같네요.
2016년에는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왔기에 이 지인의 포트레이트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별 다른 계획도 없이 그냥 여기저기 걸으면서 찍고 카메라도 DSLR이나 미러리스 같은 게 아니라 수동 기능이 좀 들어간 컴팩트카메라였어요. 그러니 대단한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진을 찍기 전, 도중, 후의 과정이 즐거웠기에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어요.
원래 작년 겨울 즈음에 그곳으로 다시 가볼까 생각 중이었어요. 20대의 절반을 보낸 곳이다보니 갈 이유는 많았죠. 그리고 가는 김에 이 지인의 사진을 다시 한 번 찍어보고. 하지만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아 결국 미뤘는데 곧 코로나가 찾아왔죠. 이런.
왜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냐면, 조금 다른 방법으로 이 일을 이어볼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가능한 방법으로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월간 안전가옥에 뭘 쓸까 고민하다가 이 사진 이야기를 하기로 했는데 이걸 쓰다보니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날이 밝으면 연락을 해봐야겠네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해도연
"가장 좋아하는 카메라는 필름은 캐논의 A-1, 디지털은 후지필름의 X100입니다. X100은 벌써 5세대가 나왔어요. 오래된 위시리스트 중 하나입니다. 렌즈교환식보다는 좋은 렌즈 하나로 고정된 단초첨단렌즈를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