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영화 <노매드랜드> 보셨어요? 매직아워, 땅에는 어둠이 내려 앉았지만 하늘은 아직 밝은. 노을 진 하늘 아래 램프를 들고 혼자 걸어가던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보고 저는 보기도 전에 마음을 훅 줘버렸습니다. 논픽션 <노마드랜드 :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노마드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삶을 미화시켰어요. 중년 여성 펀이 혼자 낡은 차 안에서 생활하고,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의 위험이나 비참함은 최대한 정제돼 있고, 돈을 빌리기 위해 오랜만에 만난 언니나 자신을 좋아하는 노마드 남자(친구)와의 관계는 따뜻하게 그리고 있어요.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저는 영화 <노매드랜드>가 소수자를 소재로한 보수적인 영화라고 봤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허허벌판에서 소변을 볼 때조차 누가 볼까 엉거주춤 바지를 올리고 차로 달려가던 펀이 노마드들이 모인 (불법)캠핑장에서 편안하고 자유롭게 걷는 장면이 정말 좋았어요.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결국 펀이 이해받기 어려운 선택을 하고, 대자연 안에 서 있을 때, 영화가 그녀의 고독과 자유를 존중하고 있다고 받아들였어요. 냉소적으로 보였던 단점들 보다 감성적으로 설득된 장점들이 제겐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마음이 퐁퐁퐁>이라는 그림책이 있어요. 아기 돼지 퐁퐁이가 두더지 친구랑 세상 구경을 나가는 이야기예요. 땅에 핀 꽃과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새들, 하늘 위의 구름 등을 경험하면서 퐁퐁이는 그들에게 마음을 줍니다. 깜깜한 밤이 되고, 달빛을 따라 집에 돌아왔을 때, 퐁퐁이는 엄마에게 물어요. 마음을 다 줘버려서 어떡하냐고. 그러면 엄마는 내일 아침이 되면 다시 마음이 생길 거라고 다독여줍니다. 정말 아침이 되자 마음이 다시 차오르고, 퐁퐁이는 두더지와 함께 바다에 나가 또다른 세상에 마음을 주려고 합니다. 마음을 다 줘서 비워져도 다음날이 되면 다시 차오른다는 표현이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올해 들어 제가 제일 많이 되뇌이는 말은 "장 하나, 단 하나."입니다. 좋았던 영화도 장 하나, 단 하나가 있었고. 매일 미션 클리어 하는 제 일상에도 장 하나, 단 하나가 있어요. 나이듦이 느껴지지만, 스스로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는 말이에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듯이, 마음이 비어졌다가도 다시 채워지듯이, 장점과 단점도 얽혀 있는 거니까 너무 괴로워하거나 연연하지 말자. 오늘도 이렇게 마음을 다스립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로빈
"이번 달에도 꿈은 없고요, 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