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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모가 되었다

분류
파트너멤버
작성자
천선란
지지난 해에 결혼한 친구에게서 올해 초 임신소식을 들었다. 내 친구 중에서는 가장 먼저 결혼한 친구였다. 결혼식 때 울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친구가 이모 됐다며 덜컥 보내 온 초음파 사진은 영 믿기지가 않아서 몇 번을 들여다봤는지 모르겠다. 나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계를 살아가는 친구가 정말 멋있어서, 존경한다고 말했던 것 같다.
빠른 시일 내에 보자고 했지만 COVID-19의 여파로 우리는 5월에야 만날 수 있었다. 본인이 한 밥을 먹이고 싶다는 말에 나는 꽃을 사서 집을 방문했다. 이제 8개월이 된 친구는 임산부의 티가 났다.
열다섯 살에 만났던 우리는 학교가 끝내면 캔모아와 노래방을 필수로 들렸던 단짝이었지만, 반대가 끌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닌지 그토록 친했던 게 신기할 정도로 우리는 모든 면에서 정반대였다. 친구는 순탄하게 사는 게 목표였고, 나는 어떻게 살든 재미있고 멋있게 사는 게 목표였다. 친구는 정해진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게 목표였다면 나는 서른 즈음 남미투어를 가거나 마흔 즈음 달에 가는 게 늘 목표였다.
나는 친구가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신혼집을 볼 때마다 친구가 원했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내 친구 부부처럼 알콩달콩하게 살고 있는 부부는 없으니 말이다. 그날 친구는 내게 미역국과 제육볶음, 그리고 본인이 만든 밑반찬을 대접했다. 나한테 본인이 만든 밥을 먹이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친구가 말했는데, 그걸 먹고 있는 내가 더 신기하다는 걸 걔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제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서로가 멋있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각자의 삶을 어떤 시기나 질투가 아니라 진심으로 응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하지 못한 걸 친구가 해내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친구로 인해 알고 있으니까.
나도 이모가 되었다. 조카가 태어나면 꼭 말해줘야겠다. 네 엄마는 이모한테 정말 소중한 친구라고.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천선란
"조카가 아들이다. 앞으로 친구가 더 멋있어 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