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인물 사이의 관계도, 어떤 특별한 장면도, 혹은 감정도. 글을 쓰다보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을 때가 있죠. 혹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튀어 나갈 때도 있고요.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야기는 특히 그런 것 같아요. 장장 1년 동안 구상하고, 80페이지나 되는 빼곡한 트리트먼트를 준비한 작품인데도 매 페이지를 쓸 때마다 새롭거든요.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분명 제가 준비한 결말까지 계획대로 달려가고 있지만, 마지막 순간 그들이 무슨 말을 하게 될지,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품게 될지 저는 알지 못해요. 그 순간이 되어보기 전엔, 마지막 장면을 써보기 전엔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무척 기대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죠.
조금 스포일러가 섞인 경험을 이야기해보면, 첫 번째 장편인 <테세우스의 배>를 썼을 때, 저는 작중의 어떤 인물들이 함께 제사를 지내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어요. 심지어 그들이 서로 마주보는 장면을 쓰기 직전까지도요. 하지만 두 인물이 방에 들어서는 순간, 저는 그들이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순식간에 푸짐한 제사상이 차려졌죠. 저 개인적으로는 그 장면이 작품의 방향을 가장 크게 뒤흔든 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는 선악 구도에서 벗어나 복잡한 구조를 갖게 되었고, 악역이었던 인물의 진심을 듣고 더는 미워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가장 최근작인 <x Cred/t>에서도 저는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이 단편은 자본주의의 화신과도 같은 주인공이 서서히 내적 모순으로 파멸해가는 이야기가 될 예정이었죠. 하지만 이야기를 쓰면서 저는 점점 이 인물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도저히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을 만큼. 결국 이 이야기는 찝찝하지만 어느 정도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건 써보기 전엔 결코 알 수 없는 일이었어요.
<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를 쓰면서 제가 울게 될줄은, 주인공이 연인에게 그런 말들을 쏟아낼 줄은 몰랐어요. 저는 그런 로맨틱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이후로 다시는 제가 그런 아름다운 대사를 쓰지 못하는 걸 보면, 그건 제 안에서 나온 말들이 아닐지도 몰라요. 어쩌면 어딘가 실재하는 또다른 세계를 잠깐 훔쳐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죠.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을 쓸 때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었어요. 왜냐면, 저는 이 이야기를 쓸 때 아무것도 정해두지 않았거든요. ‘모종의 이유로 조상님들이 되살아난다.’, ‘마지막엔 00이 부활한다.’ 딱 두 가지만 정해놓고 백지상태에서 마음대로 달려 나갔죠.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 그의 주변 인물들이 어떤 성격인지, 그들이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하게 될 것인지 저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매 순간 다음 문단에서 일어날 일조차 알지 못한 채 키보드를 두드렸죠. 마치 누군가 제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받아적는 기분마저 들 정도로.
창작의 가장 재미있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닌가 해요. 글을 쓰는 저조차도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 저는 작가이면서 동시에 첫 번째 독자예요. 제가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게 될지 매번 두근거리며 기대하게 돼요. 쓰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건 그래서 일지도요. 가장 내 취향을 잘 이해하는 완벽한 독자가, 나만을 바라보며, 오직 나만을 위한 작품을 기대하고 있으니까.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이경희
"글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작가. 최근 안전가옥의 《대스타》 단편집에 <x Cred/t>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