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상한 건 다른 데서는 안 받아 줄 것 같은데, 안전가옥은 받아 주나요?".
안전가옥의 협업 제안을 받은 전삼혜 작가님이 조심스럽게 꺼낸 질문이었습니다. ‘한국 청소년들에게 한국 SF를 더 많이 접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청소년 SF 길을 걷던 작가님이 안전가옥과 함께 도전한 장르, 바로 성남_어반_판타지입니다. 예비 마녀가 되어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는 아이, 그리고 성남 수내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는 초능력 학교를 배경으로 한 아이들의 이야기.
안전가옥의 네 번째 쇼-트,
전삼혜 작가의 《위치스 딜리버리》를 소개합니다.
여고생 마녀, 배달을 떠나다
"하늘에 계신 주님, 저는 아이돌 덕질 좀 하겠다고 알바를 시작한 것뿐이거든요."
마녀와 초능력자라면 비현실적 배경 안에 있을 것 같지만, 이들이 사는 곳은 경기도 성남시다. 그러니 수록작 <위치스 딜리버리>와 <에어프라이어 콤비의 탄생>의 장르는 ‘성남 판타지’인 셈이다. 실제로 가 볼 수도 있는 장소에서 벌어지는 초현실적 사건들, 특별한 능력을 어설프게 지닌 주인공들이 펼치는 뜻밖의 활극이 친구의 비밀 이야기처럼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지금 바로 《위치스 딜리버리》를 만나보려면?
마녀가 날고 초능력자가 뛰노는 경기도 성남시
<위치스 딜리버리>와 <에어프라이어 콤비의 탄생>의 배경은 경기도 성남시다. 우리가 아는 그곳, 시의 이름보다 분당과 판교라는 지명이 유명하고 탄천이 흐르며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도시가 맞다. 작가는 한때 판교에서 일했고 이 작품들을 쓰는 동안 분당을 꾸준히 오갔다. 실제로 성남에 있는 건물과 거리들이 소설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작품집 속의 성남은 우리가 아는 그곳이 아니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백발 마녀 소윤정의 권역이자, 전원 기숙사제 초능력자 학교가 존재하는 도시라는 점에서 그렇다. 마녀가 배달 알바를 마치고 날아서 귀환하던 중에 제 몸을 공중에 띄운 채로 잠이 든 염동력자를 발견할 수도 있는 지역인 것이다. 일상과 비일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맞닿은 도시 성남은 이능력자들이 활약할 수 있는 근사한 배경이 되어 준다.
어딘가 허술한 이능력자들
마녀와 염동력자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특별한 사람들치고는 어째 조금 허술하다. <위치스 딜리버리>의 강보라가 예비 마녀가 된 건 아이돌 덕질을 하는 데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급히 아르바이트를 구하다 보니 그만 마녀와 계약하게 됐다. 덕분에 비행 능력을 얻었지만, 그 능력 가지고 하는 일이 무언가 하면 애플망고치즈빙수나 에너지드링크 배달이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비행 도구가 진공청소기라는 사실이다. 은신 망토를 쓰고 비행하는 덕에 청소기 타고 나는 모습을 누구도 보지 못해 천만 다행이다.
<에어프라이어 콤비의 탄생>의 염동력자 미카엘라는 본인이 다니고 있는 청소년 초능력자 교육기관 김앤장 드림학교에서 전교 꼴찌를 기록 중이다. 자신의 능력을 잘 조절하지 못해서다. 제어할 수 없는 초능력을 지닌 아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부모는 미카엘라를 학교에 버리다시피 입학시켰다. 미카엘라는 낙제를 면치도 못하고 우울한 표정을 펴지도 못하고 누군가와 쉽게 가까워지지도 못한다. 텔레파시 능력자는 미카엘라의 머릿속에 욕설을 전달하고, 전기 능력자는 미카엘라의 손에 전기 충격을 준다.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강인한
정식 마녀가 아닌 보라와 만년 낙제생인 미카엘라는 어느 순간 자신의 능력에도 가치가 있음을 자각한다. 큰 위험에 빠진 친구를 돕기 위해 스스로 나서게 되는 것이다. 선배 마녀나 선생님의 힘을 빌리면 수월하련만, 그들은 어른에게 섣불리 기대지 않는다. 친구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을 어른들이 온전히 이해할 리도 없거니와 모름지기 친구 사이의 일은 친구끼리 풀어야 하는 법이다.
사람들은 청소년을 향해 곧잘 말한다. 아직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고. 수많은 청소년들이 어디에도 없는 ‘이상적인 나’를 찾아 헤맨다. 그런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친구들을 보라와 미카엘라가 본다면, 실전에서는 완벽한지 아닌지가 그다지 중요하진 않더라고 말해 줄 것이다. 어쩌면 조금 어설픈 능력으로도 소중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믿음이, 그 어떤 능력보다 강할지도 모르겠다.
목차
위치스 딜리버리 _ 6p
에어프라이어 콤비의 탄생 _ 108p
작가의 말 _ 172p
프로듀서의 말 _ 176p
줄거리
위치스 딜리버리
아이돌 콘서트 티켓값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고교생 보라는 ‘위치스 딜리버리’라는 택배 회사에 서 배달 일을 하게 되고, 얼결에 예비 마녀 계약까지 맺는다. 보라가 청소기를 타고 밤하늘을 나는 재미에 한 창 빠져 있을 즈음, 덕질을 함께하는 친구 주은은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린 나머지 마녀의 물건들을 찾기 시작 한다. 가끔씩 서늘한 말들을 내뱉게 된 주은의 변화는, 보라와 계약한 마녀 윤정이 개입해야 할 만큼 큰 사건 이 일어났음을 암시하는 전조였다.
에어프라이어 콤비의 탄생
열세 살 동갑내기 세이와 미카엘라는 초능력자 기숙학교인 김앤장드림학교의 초등부 전교 꼴찌 콤비다. 허구한 날 초능력 제어를 함께 연습하는 사이 세이는 미카엘라를 짝사랑하게 되고, 자신의 짝사랑을 지원해 달라는 미 카엘라의 부탁을 들어 주기에 이른다. 미카엘라가 마녀 택배 배달부에게 반했기에 마녀의 물건을 구매했는데, 사용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은 대가는 상상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컸다. 깊은 밤 생물실에 부주의의 대가 와 함께 갇힌 세이와 미카엘라는 낙제점을 받을 정도의 초능력만으로 이 밤을 무사히 넘겨야만 한다.
책 속으로
아니, 음. 그래도 빙수... 첫 배달이 빙수.... 네. 건당 만 원인데 제가 뭘 어쩌겠어요. 보라는 옥상으로 청소기를 들고 올라갔다. 헬멧, 망토, 청소기 충전 확인. 자, 이제 출발이다. 보라는 발로 세 번 땅을 구른 다음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외쳤다.
“날아!”
p23 <위치스 딜리버리>
성남은 윤정의 권역. 어느 마녀든 성남에서 뭔가 하려면 윤정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굳이 사업장 주소가 성남이 아니더라도, 이런 물건을 자신의 권역에서 팔아 댄다는 건 일종의 도전이라 보기에 충분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죽었다고 복창해라.
p56-57 <위치스 딜리버리>
세이는 딱 세 시간 동안 몰래 미카엘라의 감각을 공유해 보았다. 어떻게 살기에 애가 이렇게 시들어 빠지게 됐는지 궁금해서였다. 그 결과 초능력자 아이들이 다른 아이를 어떻게 괴롭히는지 온 감각으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물건을 순간 이동시키는 초능력을 남의 옷 속에 벌레나 집어넣는 데 쓰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능력 낭비잖아.
p117 <에어프라이어 콤비의 탄생>
“너 미카엘라 좋아하냐?”라는 질문을 받은 세이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 생각은 ‘그럴 만도 하지.’였다. ...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그래도 입막음은 해 두었다.
“소문내면 내 손에 와사비 바르고 네 눈에 촉각 전달한다.”
초능력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겠지.
p122 <에어프라이어 콤비의 탄생>
작가 소개
전삼혜
청소년 SF의 길을 가열차게 달리고 있다. 목표는 ‘한국 청소년들에게 한국 SF를 더 많이 접하게 하는 것.’ 지은 책으로 《날짜변경선》과 《소년소녀 진화론》이 있다.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sfwuk.org) 2기 부대표. 2010년부터 충실히 겸업 작가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전직 판교의 등대지기. 아메리카노를 물처럼 마시며 노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