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도시 속 인형들
2080년 치외법권 메가시티 평택에서 벌어지는 사이버펑크 범죄수사물!
《테세우스의 배》 이경희 작가의 샌드박스 시리즈가 시작된다
평택 특별자치시 기술규제 면제특구
윤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끔찍한 기술들을 가둬 둔 실험용 모래상자
미친 과학자들의 안전한 놀이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첨단기술이 자유롭게 거래되는 낙원이자 지옥인 도시
일명 ‘샌드박스’를 배경으로 사이버펑크 범죄수사극이 펼쳐진다!
《모래도시 속 인형들》은 이경희 작가가 앞서 《테세우스의 배》를 통해 선보인 미래의 메가시티 평택, 일명 샌드박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이버펑크 범죄수사물이다. 온갖 기술 개발과 실험이 이루어지며 상상을 뛰어넘는 사건과 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가운데 평택지검 첨단범죄수사부 검사 진강우와 민간조사사 주혜리가 나선다. 속도감 있게 휘몰아치는 전개,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결말, 다 읽고 나면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하게 와닿는 묵직한 주제의식까지, 이경희 작가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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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목차
χ Cred/t
저 디지털 세계의 좀비들 · 95p
파멸로부터의 9호 계획 · 155p
슈퍼히어로 프로듀서 · 187p
트윈플렉스 · 259p
epilogue · 313p
용어 해설 · 319p
작가의 말 · 325p
프로듀서의 말 · 330p
작가 소개
이경희
대표작 《테세우스의 배》
죽음과 외로움, 서열과 권력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테세우스의 배》가 2020 SF 어워드 장편 부문 대상에 선정되었고, 단편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이 소설 플랫폼 ‘브릿G’에서 ‘2019년 올해의 SF’로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 《그날, 그곳에서》, 《테세우스의 배》, 《SF,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등이 있다.
2020 SF 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 《테세우스의 배》의 세계가 확장된다!
2080년 메가시티 평택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민간조사사 주혜리와 첨단범죄수사부 검사 진강우의 사이버펑크 범죄수사물
지금으로부터 50년 정도 후의 미래. 주한미군 절반이 빠져나간 캠프 험프리스에 ‘기술규제 면제특구’가 설정된 뒤 평택은 법과 윤리의 제약 없이 모든 기술 개발과 실험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도시, 일명 ‘샌드박스’로 재탄생한다. 그 덕분에 기업들이 앞다투어 투자에 나서면서 평택은 대한민국 부의 절반을 빨아들인 끝에 급기야 서울을 압도하는 메가시티로 자라난다. 게다가 혁신행정특례법이 제정된 후 중앙의 간섭을 아예 받지 않는 자치정부까지 들어서며 평택은 무소불위의 세상으로 굳게 자리 잡는다.
계획적으로 지어진 초고층 초거대 건축물 메가빌딩을 중심으로 각종 생활과 교통이 빈틈없이 효율적으로 통제되는 최첨단 도시처럼 보이지만, 그 하부에는 버려진 옛 건물들이, 온갖 불법 거래와 음모들이 존재한다. 중앙정부 산하 평택지검 첨단범죄수사부 검사 진강우는 평택 자치정부 자치경찰의 견제뿐 아니라 거대 기업의 사주를 받은 동료 검사의 방해까지 받으면서도 샌드박스에서 벌어지는 다종다양한 범죄를 쫓는다. 국가 공인 탐정인 민간조사사 주혜리는 진강우의 손과 발이 되어 외주 수사관으로 맹활약한다.
기존의 영미권이나 일본 등에서 선보인 사이버펑크 작품들과 달리, 미래의 최첨단 메가시티 평택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건과 범죄의 양상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100명의 유전자를 절묘하게 조합해 만들어 낸 존재 ‘카이 크레디트’를 100명 복제하여 출연시킨 서바이벌 프로그램 〈페어런트 101〉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카이가 카이를 죽이는 살인사건이 벌어진다.(〈χ Cred/t〉) 10만 명이 넘는 저소득층 노인이 모여 사는 공공임대 메가빌딩 ‘휴먼 셰어하우스 메가빌리지’에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원인으로 보이는 연쇄 폭력 사태가 발생한다.(〈저 디지털 세계의 좀비들〉) 글로벌 해커 그룹 ‘파멸로부터의 9호 계획’이 코르도바 메가빌딩을 장악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버그를 설치하고, 수직과 수평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가 몽땅 폭주하는 가운데 진강우와 주혜리는 어떤 엘리베이터를 살려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파멸로부터의 9호 계획〉) 홀로마스크를 쓰고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슈퍼히어로 스위치가 갑자기 나타나고, 그 활약상을 찍은 촬영물들을 유통하는 기업형 스타트업 채널이 개설되어 발 빠르게 수익을 챙긴다. 슈퍼히어로의 정체에 의문을 품은 진강우와 주혜리는 그 내막을 파헤치기로 결심한다.(〈슈퍼히어로 프로듀서〉) 하나의 인격으로 두 개의 신체를 가질 수 있는 ‘트윈플렉스’ 시술을 통해 태어난 휴머노이드 원현정이 지속적으로 폭언과 학대를 당해 왔다며 원래의 신체인 원현수를 고발하는 사건이 벌어진다.(〈트윈플렉스〉) 이렇듯 재벌, 아이돌, 부동산, 가난한 노인, 음모론, 교육, 인권 문제 등 동시대적 사회적 이슈를 폭넓게 건드린다는 것이 이 연작소설의 특징이다.
한국 SF의 새로운 가능성을 거침없이 개척하고 있는 이경희 작가 연작소설
장르적 쾌감에 묵직한 사회적 문제의식까지 곁들인 야심 찬 ‘샌드박스 시리즈’의 시작!
메가시티 평택, 샌드박스라는 배경은 이경희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 이미 등장한 적이 있다. 바로 2020 SF 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대상을 받은 《테세우스의 배》가 바로 샌드박스를 무대로 펼쳐진 이야기였다. 또한 이 책의 첫 번째 작품으로 수록된 〈χ Cred/t〉는 2019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 당선작으로 안전가옥 앤솔로지 《대스타》를 통해 공개되었던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었던 진강우와 주혜리가 연작소설 《모래도시 속 인형들》을 든든하게 끌고 나간다.
이경희 작가는 《테세우스의 배》, 《그날, 그곳에서》 등을 통해 장르적 재미와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동시에 선사하는 이야기꾼, 무엇보다 콘텐츠 업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소설가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모래도시 속 인형들》은 그가 만들어 낸 ‘2080년의 메가시티 평택’이라는 탄탄한 세계관과 설정을 중심으로 펼쳐질 ‘샌드박스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다. 속도감 있게 휘몰아치는 전개,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결말, 다 읽고 나면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하게 느껴지는 묵직한 메시지까지, 이경희 작가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음습하고 어두운 거리, 전자 기기와 자본에 지배당하는 암울하고 절망적인 시대상, 기계에 잠식당한 인간성”(《SF, 이 좋은 걸 이제야 알았다니》에서 인용) 등이 이야기의 주조를 이룬다는 면에서 《모래도시 속 인형들》, 나아가 샌드박스 시리즈는 SF 중에서도 사이버펑크 장르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사이버펑크의 문법을 따르고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경희 작가가 독자적으로 구축한 한국적인 배경과 상황을 중심으로 한국적인 정서를 녹여 냈다는 점에서 더욱 이채롭고 특별하다.
《모래도시 속 인형들》을 읽다 보면, 분명히 아직 오지도 않은 비현실적인 미래에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마치 오늘 아침 뉴스에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든다. 가상의 세계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현실감. 그러나 그 암울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실없는 농담을 던지고 일단 부딪치고 보는 진강우와 주혜리에게서 묘한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다.
“국가가 어찌할 수 없는 괴물”이 되어 버린 샌드박스, “지금 여기서 멈추지 못한다면” “힘을 갖지 못한 모든 이들이 열등종으로 취급받게 될 세상”이 오고야 말 것이다. 스펙터클한 대서사로 이어질 샌드박스 시리즈의 세계에서 주인공들은 그런 미래를 기어코 바꿔 놓을 수 있을까. 이 가슴 벅차오르는 여정을 함께할 독자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책 속으로
“카이 크레디트는 한마디로 넷 소사이어티 사상 최고의 슈퍼스타예요.”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 이놈이 대체 뭘로 유명한 건데?”
“유명한 걸로요.”
“뭐?”
“유명한 걸로 유명하다고요.”
강우의 얼굴에 짜증이 솟았다.
“그게 뭐야, 대체.”
와,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혜리는 배시시 떠오르는 비웃음을 손으로 가렸다.
“이거 첨부터 쭉 들어 보면 진짜 재밌는 이야긴데. 혹시 〈페어런트 101〉이란 프로그램은 들어 보셨어요?”
p. 9 | 〈χ Cred/t〉
“망할!” “놈의!” “바이러스!” “내가!” “왜!” “그놈 땜에!” “이 고생을!”
버려진 구축 건물 옥상에 도착한 혜리는 가쁜 숨을 고르며 앞을 보았다. 산맥처럼 치솟은 마천루의 숲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평택 특별자치시 기술규제 면제특구. 일명 샌드박스. 윤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끔찍한 기술들을 가둬 둔 실험용 모래 상자. 미친 과학자들의 안전한 놀이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첨단기술이 자유롭게 거래되는 낙원이자 지옥인 도시.
그곳에서 좀비 떼가 몰려오고 있었다.
p. 97 | 〈저 디지털 세계의 좀비들〉
일주일 전, 글로벌 해커 그룹 ‘파멸로부터의 9호 계획’이 평택 국제공항으로 입국했다는 첩보가 입수되었다. 곧 다가올 세상의 파멸을 경고한다며 전 세계 곳곳에서 별별 기상천외한 장난질을 벌여 온 놈들이 이번엔 샌드박스를 놀이터로 삼은 모양이었다.
밤낮으로 동향을 추적한 끝에 겨우 해커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 놈들의 목표가 코르도바 메가빌딩이라는 정보였다. 실낱같은 단서에 의지해 사흘간 잠복을 이어 간 혜리는 화물 운송용 리니어 엘리베이터를 해킹하고 있던 멤버 한 명을 발견했다. 그리고 호기롭게 안으로 뛰어들어 놈을 체포하긴 했는데….
대체 뭐냐고, 이 대책 없는 똥멍청이는.
p. 160 | 〈파멸로부터의 9호 계획〉
사무실 한쪽 벽면을 꽉 채운 월스크린에 방금 입수된 ‘스위치(Switch)’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멀리서 손짓만으로 빌런의 의수를 찌그러뜨리는 것을 보니 오늘은 ‘키네시스’를 사용한 모양이었다. 나타날 때마다 매번 사용하는 능력이 바뀌는 탓에 사람들은 그에게 스위치라는 별명을 붙였다.
홀로마스크(holomask)를 쓰고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슈퍼히어로에 대한 소문이 넷 소사이어티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약 6개월 전부터였다. 처음엔 괴담이나 다름없는 뜬소문으로, 목격담을 풀어놓은 썰들로, 흐릿한 영상으로, 전문가의 라이브 캠 촬영으로, 급기야 3차원 VR 콘텐츠까지 점차 다양한 증거들이 채널 사이를 부유하기 시작했다.
스위치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는 ‘철탑 빤스 사건’이라 불리는 에피소드 이후부터였다. 데이트 폭력 사건으로 고발된 LnK금융그룹 막내아들을 조사하던 검찰이 돌연 기소를 포기하자, 그날 밤 스위치는 LnK 저택에 침입해 그를 납치했다. 납치된 막내아들은 다음 날 아침 LnK 빌딩 옥상 철탑에 온몸이 꽁꽁 묶인 채 속옷 바람으로 발견되었다.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상세한 사과문과 함께.
신종 장난 정도로 치부되던 슈퍼히어로 스위치의 존재는 그 사건 이후 기정사실이 되었다.
p. 190~191 | 〈슈퍼히어로 프로듀서〉 중에서)
이딴 재판이 다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결과는 무죄로 정해져 있는데.
핏물을 머금은 입술이 소리 없이 속삭였다. 재판장이 한참 동안 판결문을 읊었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강우의 머릿속에는 언제 뛰쳐나가 현정을 말려야 하는지,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따라서, 피고인이 자행한 지속적인 폭언 및 학대, 폭행의 대상물인 ‘원현정’은 사이버네틱 휴머노이드가 아닌 트윈플렉스(twinplex)에 해당하며, 본 사건을 심리적 치유가 필요한 피고인의 자해로 보아야 한다는 피고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이에 따라, 피고인의 행위가 휴머노이드 보호법 제17조 7항의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한 검찰의 공소 사실은 부적합하므로….”
“다 집어치워!”
p. 261 | 〈트윈플렉스〉
“상식적으로 원미연한테 걸려 있는 혐의가 이거 하나뿐이겠냐? 원미연은 체포 못 해. 썩어서가 아니라, 체포할 능력이 없어서 그래. 우리가 가진 무장으로는 풍신 빌딩 로비도 못 뚫으니까. 여긴 그런 곳이야. 샌드박스는 이미 국가가 어찌할 수 없는 괴물이 됐단 말이야.”
“…….”
“강우야. 이곳에서 우린 외부인이야. 그냥 몇 년 조용히 있다 발령받고 떠나면 그만인 사람들이라고.”
“그래서 그냥 이렇게 포기하자고요?”
p. 282~283 | 〈트윈플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