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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

참석자
테오
주디
* 2019년 2월 ‘안전가옥 콘텐츠 스터디’에 참여한 안전가옥 운영멤버 Sol(고은비)이 스터디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이번 달에 함께 본 콘텐츠,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

안전가옥 라이브러리에는 큐레이션 서가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테마를 두고 책을 큐레이션해 모아 둔 서가입니다. 그중에서 특히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서가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2018년 1월에 마련된 ‘어슐러 르 귄 서가’입니다.​
어슐러 르 귄(Ursula K. Le Guin)은 2018년 1월 22일, 88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SF계 거장의 죽음이었던 만큼 많은 분들이 안타까움과 애도를 표했습니다. 안전가옥 또한 그가 세상에 남긴 작품들과 메시지를 기리며 작가의 큐레이션 서가를 마련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습니다. 운영멤버들은 어슐러 르 귄 작가 1주기를 맞아 그의 업적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을 이 달의 스터디 콘텐츠로 결정했습니다.

책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

출처 : YES24
줄거리 일곱 개의 달을 가진 행성 웨렐과 웨렐의 식민지 행성 예이오웨이. 이곳을 배경으로 자유, 사랑, 그리고 용서에 대한 네 가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네 가지 이야기는 서로 독립되어있으나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르 귄 문학세계의 중심을 이루는 헤인 시리즈의 연작 단편집입니다. [출처 : YES24]

작가 <어슐러 K. 르 귄>

출처 : 허프포스트 코리아
작가. 1929년 미국 출생. 2018년 작고. '어스시 시리즈'와 '헤인 우주 시리즈' 그리고 이밖에 수많은 작품을 세상에 남겼습니다. 환상적이고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낸 작가로 평가받으며 휴고 상, 네뷸러 상, 로커스 상, 세계환상소설상 등 유서 깊은 문학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였습니다. [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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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운영멤버가 본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

이래서 좋았다

“이런 이야기가 바로 군상극의 정석이 아닐까요?”
르 귄이 만들어낸 세계에는 본토 행성과 식민지 행성, 같은 종에 속하지만 외형적으로 다른 지배층과 피지배층, 남성과 여성 등 명확한 기준으로 양분되는 계급이 존재해요. 이런 구분들이 당연시되고요.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은 이 세계의 경계에 걸친 네 가지 인물을 보여주죠. 실패한 혁명군의 대장, 식민지 행성으로 파견되어 사건에 휩쓸린 본토 출신의 특별대사, 오랜 가문의 전통에 엇나갈 운명을 타고난 적자, 이 모든 계급의 최하층 출신인 여성 혁명가까지. 이 네 명의 경계인은 자신이 속한 아이러니, 즉 스스로와 갈등하다가 결국 이를 받아들이고 용서에 이르게 돼요.
맞습니다. 네 개의 작품은 같은 세계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일부 등장인물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사실 서로 독립적인 작품이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이런 면에서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은 군상극이라고 볼 수 있고, 에픽이라 부르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거예요.
테오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픽션에서도 평등과 박애, 자유와 사랑와 같은 단어들은 구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거대한 의미가 담기는, 그릇같은 단어니까요. 르 귄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르 귄은 한 명의 영웅이나 투사가 아니라, 여러 개인의 세상을 통해 그 단어들을 구현해냅니다. 아주 느리지만 그래서 더 진솔하게 느껴지죠.

이래서 색달랐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지만, 영웅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 흥미로워요.”​
테오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이 시간적 배경으로 택한 시점인데요, 소설은 30년간 수행된 ‘해방전쟁’을 지나 예이오웨이가 피지배 상태를 벗어난 이후의 시점을 다룹니다. 즉 전쟁 자체가 아니라 전쟁 이후 상황에 포커스를 두는 거예요.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을 전후소설, 탈식민주의 소설의 맥락에서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물론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죠. 하지만 전쟁을 다루는 다른 여러 이야기처럼 영웅 서사를 따르진 않습니다.
‘역사는 역사대로 흐르고 그 일부를 이루는 개인들의 역사 역시 알아서 흐른다.’ 이런 태도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런 구성을 ‘에픽 군상극’이라고 부르는데요. ‘에픽 영웅물’과 차이를 두고 싶어서에요. 개인과 세계가 서로 굵직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행될 경우 에픽 영웅물에 해당하고, 개인과 세계가 미미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행될 경우 에픽 군상극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죠. 에픽 영웅물은 주인공이 세계의 운명을 뒤바꾸는, 혹은 뒤바꾸려 시도하는 형태로 진행되지만 에픽 군상극의 주인공은 세계의 운명보다는 개인의 문제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에서는 이 지점이 매우 명확하게 드러나요.
저는 르 귄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 메시지를 가장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인물과 이야기 구조를 택했고, 이를 담아낼 ‘헤인 행성계’라는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어낸 것 아닐까요? 그러니까, 이 세계관은 오로지 르 귄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기 위한 상징으로 존재하는 거대한 실험장 같은 것이죠. 세계관은 메시지를 전달을 위한 수단이기에, 그 세계와 교류하는 이야기보다 그 안에 담긴 미미하지만 소중한 인물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거예요.
세계관이 있고 그 안에 인물이 있다면, 저는 그 세계와 사람들이 겪는 사건/갈등 사이의 유기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굳이 그 세계를 만든 이유, 그리고 그 중에서도 굳이 그들의 이야기여야 하는 이유가 필요한 거예요. 반대로 굳이 그 세계에서 일어날 필요가 없는, 그곳을 배경으로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라면 소화할 의지가 나지 않아요. 이 책은 그 유기성을 제대로 보여줘요. 다만 저는 뤽의 의견과 다르게, 세계와 메시지와 인물/사건 중에 작가가 구상한 첫 번째는 무엇이었을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르 귄이 쓴 작법서도 읽어보고 싶어 졌어요.

이래서 아쉬웠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을 찾는 건, 솔직히 불가능인 것 같네요.”
기본적으로 저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독립적 세계관에 이입을 잘 못하는 편인데요, 이 책은 달랐어요. 그래서 ‘이입은 한 가지 요소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한 가지 요소로 가능하기도 하다.’는 역설적인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사랑이라는 테마, 그밖에도 페미니즘, 소수자, 계급에 대한 은유들은 제가 일단 좋아하고 보는 요소인데요.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아주 좋았어요. ‘내가 이렇게 세계관이 강한 이야기도 재밌게 읽을 수 있구나’ 하고 새로 발견을 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SF 혹은 판타지로서, 이 책이 잘 구축된 세계관만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건 절대 아니니까요. 쏠의 말처럼 이 책은 옛날 작품이지만 아주 세련되고 피씨합니다. 이런 책에서 아쉬운 점을 찾는다는 건, 솔직히 불가능이고 오만한 일이죠. 그래서 아쉬운 점 대신 책을 읽으며 정말 좋았던 부분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 단편인 <용서의 날>의 마지막 문단을 꼭 읽어보시길 바라요. 이야기만큼이나 문장과 표현까지 아주 아름답고 예쁜 작품임을 알게 되실 겁니다.
안전가옥 콘텐츠 스터디
_2019년 2월 참여 운영멤버 : 뤽, 신, 테오, 쏠, 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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