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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 듀나 x 이산화

발행일
2020/10/26
장르
SF
타임리프
미스터리
분류
쇼-트
보도자료
[보도자료] 짝꿍_듀나x이산화.pdf
짝을 이루는 동료. 혹은 뜻이 맞거나 매우 친한 사람을 이르는 말. 안전가옥 쇼-트의 ‘짝꿍’은 두 명의 창작자가 하나의 짝이 되어 만들어 내는 소설집입니다. 활발하게 활동해 온 기성 작가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신진 작가의 작품을 함께 엮어, 두 창작자가 다뤄 온 이야기, 장르, 소재, 문제의식 등을 좀 더 선명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지요. 안전가옥의 다섯 번째 쇼-트 시리즈, 그리고 첫 번째 '짝꿍'. 듀나, 이산화 작가의 《짝꿍: 듀나 x 이산화》를 소개합니다.

짝꿍: 듀나 x 이산화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자 ‘짝꿍’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집이다. ‘짝꿍’은 장르문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온 기성 작가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신진 작가의 작품을 함께 엮음으로써 장르문학의 오늘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프로젝트이다.
SF에 초점을 맞춘 이번 단편집에서는 듀나, 이산화 작가가 합을 이루었다. 듀나 작가는 SF 작품을 발표할 지면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1990년대부터 꾸준히 정교한 상상의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의 글을 읽으며 성장해 2010년대에 데뷔한 이산화 작가는 탄탄한 설정과 치밀한 구성으로 독자들의 눈길을 빠르게 사로잡았다.
《짝꿍: 듀나×이산화》 속 세 편의 이야기는 각각 소멸해 가는 우주, 스스로 진화하는 기계, 고대 지하 유적이 품은 비밀을 추적하면서 듀나, 이산화 작가가 지닌 매력의 정수를 보여 준다. 최근 들어 성장세가 뚜렷한 국내 SF의 현주소를 확인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지금 《짝꿍: 듀나 x 이산화》를 만나보려면?

듀나 작가의 소설 두 편은 우리 현실의 부분 부분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정확하게 묘사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 주는 이야기들이다. 가지각색으로 즐길 만한 온갖 상상들이 가득하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이야깃거리를 넘치도록 담아 둔 느낌이다. 이산화 작가의 이야기는 무엇이 묻혀 있는지 알 수 없는 고대 유적을 발굴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재미있는 소설답게 이미 풀린 궁금증은 더 큰 호기심을 일으키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이끌어 낸다. 결말에 이르면 서로 다른 모든 모습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초점으로 모이면서 그 멋이 폭발한다. 곽재식(작가)
최근 한국 SF의 빛나는 성장의 기저에는 듀나라는 살아 있는 거인(토끼?)이 있다. 듀나는 한국 SF가 핍진했던 1994년부터 세계적 수준의 SF를 꾸준히 써 왔다. 이제 그 거장의 영향을 받은 이산화 같은 이야기꾼들이 탄생하여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실시간으로 확립하고 있다. 첫 짝꿍 특집의 작가진이 듀나와 이산화라는 것을 듣고 훌륭한 조합이 되리라 생각했다. 원고를 읽고 난 후 내 예측이 적확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담담했다. 당연했으니까. 심너울(작가)

겹쳐지는 우주

《짝꿍: 듀나×이산화》의 수록작 세 편은 분명 별개의 이야기들이지만, 모든 작품의 배경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세계가 중첩된다는 것이다. <사라지는 미로 속 짐승들>(듀나)의 주인공들은 그들의 우주가 허구라는 사실을 잘 안다. 누군가가 이 우주를 게임판 삼아 움직이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실제’ 우주와 이어지는 통로를 찾으려 하는데, 허구의 우주가 사라져 가는 위기를 막기 위해서다. 여러 차원의 세계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불가사리를 위하여>(듀나)의 시간인들은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시간선을 만들어 낸다. 인간의 기술력으로 만든 기계신이 도리어 인간 정신을 지배하게 되자 수많은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바꾸려 한 까닭이다. 비슷한 시도가 거듭된 나머지 19세기 중반의 조선인 말순까지도 평행 우주를 상식으로 여기기에 이른다.
<어른벌레>(이산화)는 더욱 먼 과거로 향한다. 이스라엘의 청동기시대 유적지를 탐사하던 중 불가사의한 사건에 휘말린 고고학자의 이야기는, 언뜻 허황되어 보이는 원시종교 가설과 구약성경 기록이 문자 그대로의 사실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청동기시대를 증언할 사람은 이제 없지만 유적과 유물과 그 밖의 무언가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당시의 세계가 현재와는 상당히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증거를 품은 채로.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

중첩되는 것은 세계뿐만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또한 다른 존재와 겹쳐진다. <사라지는 미로 속 짐승들>의 주인공 라다 문은 서두에서부터 자신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 추리소설 설정의 주인공임을 밝힌다. 함께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도 각자 다른 장르, 다른 이야기에 속해 있다. 하나의 세상에 다양한 이야기 속 인물이 공존하는 것은 누군가의 의지가 작용한 결과다. 나는 나이자 다른 존재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물인 것이다. 그가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토록 다양한 장르, 그만큼 다양한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다른 두 작품은 순수한 인간성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불가사리를 위하여>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기계 ‘불가사리’는 인간과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인간을 닮아 간다. <어른벌레> 속 고대인들은 인간과 다른 생물 사이의 경계를 현대인처럼 뚜렷하게 나누지 않는다. 이들 작품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간과 다른 존재의 결합을 꺼려한다. 무엇을 두려워하기 때문인가?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남아 있게 해 주는가? 그것은 인간이 꼭 지켜야 할, 진정 가치 있는 것인가?

세계의 실체를 향해

우리가 이 세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인식은 어쩌면 오만이다. 곁에 있는 사람의 세상을 이해하는 일조차도 어렵다. <불가사리를 위하여>에 등장하는 이탈리아인들은 말순에게 거절당해 자살한 화가를 동정하지만, 말순과 함께 생활하는 성초는 양반집 자제인 화가가 농갓집 딸인 말순을 협박했다는 사실을 더해야 이야기가 완성된다고 말한다. <사라지는 미로 속 짐승들>의 우주 전체가 어떤 모습인지, <어른벌레>에서 일어난 사건의 전말이 어떤 형태인지 알기 위해서도 서로 다른 위치에 선 여러 존재의 시각이 필요하다.
다른 위치에 서거나 다른 존재의 시각을 취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러나 노력하는 것쯤은 가능하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시야를 넓게 틔워 주지만 SF의 효과는 유독 특별하다. 굳건해 보이는 물리적인 경계조차 훌쩍 뛰어넘으면서 새로운 전망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짝꿍: 듀나×이산화》 속 이야기들은 말한다. 눈앞의 세계는 전부가 아니며 인간이라는 형태 또한 우리의 유일한 형상이 아닐 수 있다고. 감지 가능한 세계와 인간 존재라는, 절대적이라 여겨지는 조건조차 무너뜨린다면 이 세계의 숨겨진 진실에 한 발 더 다가가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책을 선택한, SF 독자들이 누리는 황홀한 특권이다.

목차

사라지는 미로 속 짐승들 · 6p
불가사리를 위하여 · 44p
어른벌레 · 68p
추천글 · 134p
작가의 말 · 138p
프로듀서의 말 · 144p

줄거리

사라지는 미로 속 짐승들
사립 탐정 라다 문이 살고 있는 세계는 사라지는 중이다. 도시들은 조금씩 좁아지다가 어느 순간 펑 하고 소멸해 버린다. 이 우주가 일종의 게임을 위해 이용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시민들 중 누군가가 게임 바깥에서 온 유저이며 그들이 세계에 개입한다는 주장은 아직 가설일 뿐이다. 라다 문은 자신의 어머니가 유저라고 생각하는 열세 살 아이 우서영과 그 아이가 세계 소멸을 막는 단서를 쥐고 있다고 여기는 숙적을 연달아 마주하는 가운데 자신의 우주가 존재하는 원리가 무엇인지를 파악해 나간다.
불가사리를 위하여
19세기 중반의 강원도, 가난한 딸부잣집 막내딸인 말순은 ‘불가사리’의 밥이 될 처지에 놓인다. 자신을 모델로 삼던 화가의 애정을 거부한 대가로, 인간을 이용하는 인공지능 기계인 일명 불가사리가 출몰하는 지역에 버려진 것이다. 그의 목숨을 구한 시간인의 설명에 따르면 미래의 불가사리들은 인간과 전쟁을 치르며 대립하게 된다. 시간 여행이 가능한 시간인들은 과거로 거슬러 오르고 다른 우주를 창조하면서 역사를 바꿀 수 있는지 탐색하고 있다. 시간인들과 함께 지내게 된 말순은 자신의 시대와 인간이라는 존재를 모두 넘어설 가능성을 엿본다.
어른벌레
이스라엘의 고대 유적지 텔 미크네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지하 동굴에서 발굴 작업을 하던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 고고학 박사 테닐 스트롱혼이 제때 빠져나오지 못했다. 관련 증언을 통해 상식선 밖의 일이 일어났음을 감지한 수사 당국은 당시 테닐과 함께 있었던 발굴 팀장 레온에게 상세한 진술을 듣는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도 핵심에 다다르지 못한 수사관은 테닐이 생전에 몰두했던 원시종교의 의식과 그가 주목했다는 성경의 한 구절을 매개로 ‘말은 안 되지만 이해는 되는’ 사건의 실체에 다가선다.

책 속으로

비정상적으로 성공률이 높은 사립 탐정인 나는 아마 추리소설 설정의 주인공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게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나의 정신을 조종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게임의 목표인가? 만약 그 게임이 실패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왜 나는 그 경우를 기억하지 못하는가? 내가 이 우주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게임의 일부이고 성공만을 기억한다면 어떻게 우주는 일관성을 갖는가?
p. 10 <사라지는 미로 속 짐승들>
다행히도 아직 수도와 전기는 끊어지지 않았다. 이를 사라진 도시들이 아직 존재한다는 증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가짜라는 것이 입증된 지금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발전소나 정수장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뉴욕, 파리, 나이로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p. 13 <사라지는 미로 속 짐승들>
우리가 아는 건 인간의 이야기뿐입니다. 기계들에겐 다른 이야기가 있겠지요. 아마 저들을 피해 과거로 달아나는 건 그냥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릅니다. 전 전체 이야기를 인간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싶을 뿐인데, 이 역시 어리석은 기대인지도 모르지요.
p. 56 <불가사리를 위하여>
수많은 시간인들이 다양하게 변주된 미래의 역사를 갖고 왔고, 그중 어느 것도 조선엔 유리하지 않았다. 나라는 멸망할 것이다. 언어와 사회는 변화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인과 협조한다면, 이들을 막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보다 덜 고통스러운 길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끝에 우리를 모두 잡아먹는 기계신이 있다고 해도.
p. 56~57 <불가사리를 위하여>
누군가가 일부러 저 깊은 땅속까지 좁디좁은 굴을 파서, 그 끝에 기묘하게 생긴 방을 하나 만들어 둔 겁니다. 초기 철기시대인의 기술로는 더없이 위험천만한 일이었으리란 건 말할 필요도 없지요.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굴을 파 놓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걸 알아내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 들어오길 잘했다.’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때까지는 말입니다.
p. 83 <어른벌레>
아마 테닐도 알았을걸요? 그 유적에서 빠져나가서 자기가 발견한 내용을 아무리 떠들어 봐야, 어차피 자기 말 따위는 그 누구도 진지하게 들어 주지 않을 거란 사실을 말이에요. 심지어 테닐 자신조차 지금의 저처럼 스스로가 겪은 일을 온전히 믿을 수 없게 되리라는 것도요. 그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차라리 자신이 옳았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히 하는 길을 택했던 게 아닐까요.
p. 119 <어른벌레>

작가 소개

듀나

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다. 장편소설 《민트의 세계》, 《제저벨》을 펴냈으며, 소설집으로는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태평양 횡단 특급》, 《면세구역》, 《아직은 신이 아니야》, 《대리전》, 《용의 이》, 《나비전쟁》, 《구부전》, 《두번째 유모》가 있다.

이산화

화학을 전공하였고 SF를 쓴다. 사이버펑크 장편소설 《오류가 발생했습니다》와 단편집 《증명된 사실》을 출간하였으며, 이외에도 다수의 앤솔로지에 작품을 수록하였다. 단편 〈증명된 사실〉은 2018 SF어워드 중·단편소설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