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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야 Kaya

직함
프로듀싱 인턴
입사
2021/11/09
연락처
kaya@safehouse.kr
명함 속 한 줄
“필사적으로 행동해야 할 순간은 인생에 몇 번 찾아오지 않는다” - 영화 <거북이는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Q. 안녕하세요 카야!
A. 안녕하세요, 리서치 인턴으로 입사하여 프로듀싱 인턴으로 전환된 카야입니다!
Q. 영상을 전공했다고 들었어요. 학교에서 영화를 제작해 극장에 올렸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A. 학창시절,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고 싶었고 시인이셨던 담임 선생님께서도 적극 추천해주셨어요. 하지만 ‘애매한 재능으로 설치면 안 되지!’ 하고 지레 겁먹고 포기했습니다.
대신 시나리오와 미학을 배울 수 있는 영상학과로 타협했는데요, 촬영장은 예술보단 노동의 현장 같더라고요. 촬영장에 정을 붙이지 못한 저는 학보사 및 신문사에서 기사를 쓰고, 학과에선 미학 위주의 수업을 들으며 (방황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전공 필수로 영화 한 편을 반드시 제작해야 했어요. 제작비는 운 좋게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해결할 수 있었지만(무한 감사), 그냥….그냥 찍기가 너무 싫더라고요. 그래도 학우들의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찍어내고, 밤새워가며 편집하고, 학과 영화제 날 영화의 전당 소극장에 영화를 올렸는데.
저는 그때 수많은 영화 감독님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려보게 됐어요. 내가 상업영화 감독이었으면 매일매일 온종일 표 끊어서 영화관 죽치고 있었을 거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 머릿속에 모호하게 존재하던 이미지와 상념이 하나의 인격이 되어 살아 움직이고, 하나의 세계가 창조되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감각이었습니다.
“영화는 노동이다” -카야 (1998~)
“하지만 내 영화는 매일 볼 수 있다” -카야(1998~)
그리고 문득 초등학생 때가 떠올랐어요. 그 언젠가, 그림 잘 그리는 친구를 캐스팅해 함께 만화 한 편을 제작했던 시절이요. 제가 글 작가를 맡고, 친구가 그림 작가를 맡았는데 친구들에게 100원의 대여비를 받고 저희의 만화책을 보여줬어요. 총 800원쯤 벌었던 것 같은데, 창작물로 수익을 낸 최초의 경험이네요.
저는 운명론자가 아니지만, 왠지 그때가 제 인생의 복선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겁먹고 창작의 길을 피했지만 결국은 돌고 돌아 창작을 사랑하게 되었으니까요. 제가 이 생각을 한 게 24살 2월인데 안전가옥에 입사한 게 11월이니 타이밍조차도 운명 같지 않나요?! 그렇지만 저는 정말 운명론자가 아니긴 합니다.
수영강습 다니며 기획한 만화
아이돌의 중학교 적응기...라는 내용
거금 들여 봐준 친구들에게 무한 감사(^^)
Q. 협업하며 영화를 만들었던 경험, 안전가옥과는 어떻게 연결된 것일까요?
A. 제가 안전가옥에 입사할 때 작성한 지원서에 이런 말을 적었어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지만, ‘백지장 정도는 혼자 드는 게 편할 것 같은데’ 싶은 순간들이 사실은 많았다고요. (ex. 교양 조별과제…) 하지만 뒤에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함께’ 했기 때문에 영화도 찍을 수 있었고, 공모전 수상도 할 수 있었다고요.
학과 광고영상 동아리 회장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쌓아가고, 특히나 영화를 하나 찍으면서 ‘함께 하는 것’의 힘이 얼마나 큰지 깨달을 수 있었어요. 숫자가 아닌 사람의 경우 1+1은 2보다 크다는 것을요. 2보다 더 큰 품이 들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2보다 더 큰 결과물도 나올 수 있다는 걸, 저는 그런 순간을 아주 많이 목격했습니다.
이런 제게 ‘함께 협업하여 창작한다’는 안전가옥의 모토는 아주 설득력 있고, 매력적이었습니다. 안전가옥이 만들어갈 세계의 한 부분이 저의 조각으로 채워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침 학교 교수님께서도 제게 잘 맞을 것 같다며 채용 공고를 전달해주셔서, 자신감을 갖고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운명 같죠??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입사하게 되어 정말 기뻐요!!
Q. 카야는 리서치 인턴으로 들어와 지금은 프로듀싱 인턴으로 전환되었는데요. 둘의 업무는 어떻게 달라지게 될까요?
A. 처음에는 리서치 인턴으로 들어와 내부 프로젝트에서 다루고 있는 프로그램을 분석하고, 정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저는 한번 꽂히면 구멍 뚫릴 때까지 돌려보는 스타일인데요. 9살에 처음 본 애니메이션 <다! 다! 다!>는 25살인 지금까지도 매년 정주행 중이고, 음악도 하나 꽂히면 한 달은 그 앨범만 반복재생해요. (광기) 그래서 같은 프로그램을 계속 돌려 보는 일이 적성에 꽤나 맞았습니다.
프로듀싱 인턴으로서는 작가님과 팀원들과 협력하여 하나의 세계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매력적이게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작가님 눈엔 너무 익숙할 세계 속에 새로운 눈으로 들어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인물에게 말도 걸어보고 하는 일이요. 영상학과에 다니며 친구들의 시나리오를 읽고 함께 수정해나가던 일과 큰 틀에서는 같지만, 그곳은 학교였고 이곳은 회사인지라… 제가 더 발전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Q. 얼마전 타임캡슐을 꺼내봤다고 들었어요. 그때의 카야와 지금의 카야는 얼마나 다른가요?
A. 한달 전 쯤에 20살에 묻어둔 타임캡슐을 꺼내봤어요. 5년 뒤의 나에게 편지를 써뒀는데, 많이 달라져 있을까 봐 무섭고, 또 너무 그대로일까 봐 걱정된다고 적혀있더라고요. 포기하고 싶으면 노력했던 그때의 나를 기억해달라고도 적혀있었는데… 뭘 포기한단 건진 모르겠지만, 25살의 제가 뭔가를 포기할 것 같았나 봐요.
저는 20살 때랑 많이 달라졌어요. 자아의 연속성을 의심할 만큼, 사람이 달라졌는데. 그래서인지 20살의 제가 꼭 타인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랬더니 이상하게 책임감이 생겼어요.
‘내가 타인이었다면 나는 나한테 더 다정했을 텐데.’ 자신을 많이 몰아붙이는 스타일이라,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요. 타인이 된 20살의 나를 떠올리면, 그 애한테 미안해서라도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또 가치관이 변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가장 저의 최신 근황입니다.
Q. 안전가옥 멤버들은 명함에 저마다 다른 ‘작품 속 한 줄’을 적죠! 카야 명함에 들어있는 ‘작품 속 한 줄’은 무엇인가요?
“필사적으로 행동해야 할 순간은 인생에 몇 번 찾아오지 않는다” - 영화 <거북이는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미키 사토시
고등학생이던 시절 친구의 추천으로 본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그 이후로 제 인생영화 탑3 자리를 늘 지키고 있는 영화인데요.
인생에서 꼭 잡아야 할 기회가 몇 번이나 올까? 그런 생각을 하면 저는 눈앞의 기회를 그냥 넘길 수가 없어요. 마음이 나태해질 때면 언제나 이 문구를 보며 마음을 다잡곤 했답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못 할 말과, 놓쳐버리면 아쉬울 순간들. 그런 걸 몸소 겪으며 더더욱 소중해진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