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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월간 안전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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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월간 안전가옥을 써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매우 막막했습니다. 가상의 글이 아니라 나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니, 무엇을 써야 할까요?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씻고 옷 입고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밥 먹고 씻고 잠을 자는, 늘 비슷한 일상을 사는 내가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그리고 나에 대한 정보나 취향 등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걸 왠지 모르게 꺼리는 내가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늘 두루뭉술하게 썼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월간 안전가옥도 그렇겠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쓴 소설, 제가 쓸 소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2019년 봄 미세먼지 앤솔로지에 <서대전네거리역 미세먼지 청정구역>이 당선된 후 쓴 게 <찌찌레이저>입니다. 미세먼지 앤솔로지가 11월에 나왔기 때문에, ‘김청귤’이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공개한 소설입니다. 아마 이 소설을 읽고 저를 알게 된 분도 계실 거예요. 아마 이 소설을 쓸 때 한창 브래지어에 대해 말이 많았을 거예요. 브래지어가 세상을 망치냐? 하는 말에 이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찌찌에서 레이저를 쏘며 세상을 망치고 구원하는 이야기, 멋지지 않나요? 올해 안에 찌찌레이저 2부를 쓰는 게 목표입니다.
가끔, 혹은 때때로 누가 읽어주지? 나는 왜 글을 쓰는 거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괴감이 들 때도 있지만. 즐거우니까요. 쓰는 것도 즐겁고, 다 쓴 글을 읽으면 재밌어요. 이래서 내가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물론 들지만, 제가 즐겁지 않은 글을 어떻게 쓰겠어요.
한 분이라도 기대해주신다면, 더 기쁘게 쓰겠지만요!
작년에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었는데 매우 좋았습니다. 제 주변에는 아기, 아이, 어린이가 없는데 이 책을 통해 어린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른인 우리가 어떻게 어린이를 대하면 좋을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어요. 어린이와 대화를 하더라도 존댓말을 써야지, 존중해줘야지, 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최근에 쓴 <하얀색 음모>는 원래 생각했던 이야기와 전혀 다른 소설이 되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도중, 소재와 대략적인 줄거리가 생각났어요. 성인과 성인간의 사랑이야기였습니다. 이걸 여자와 여자로 할까, 여자와 남자로 할까 고민했었는데… 최종적으로 나온 건 ‘일정한 루틴을 가진 프리랜서의 루틴과도 같은 사랑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몇 번이고 어린이를 구하고, 다친 어린이들의 마음을 구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싶으신 분께도 <어린이라는 세계>를 추천해요. 아주 좋은 책이에요. 제가 쓰고자 했던 이야기에서 완전히 벗어나도 좋을 만큼이요.
최근에는 <사이보그가 되다>를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바로 <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를 읽었어요. 둘 다 장애에 관련된 책입니다. 감각장애와 신체장애, 사이보그에 대한 장애인 개인의 생각과 사회의 낙관적인 생각, 장애와 빌런, 장애인에 대한 시혜적인 태도와 그럼에도 그게 도움이 되는 이들, 어린 시절에 따돌림을 받았던 경험이 성인이 된 저자에게 미치는 영향, 왜 동화는 장애가 있는 주인공이 비장애인이 되어 행복하게 끝이 날까라는 의문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장애를 가진 빌런이라도 좋으니 장애인의 존재를 지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 문장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당사자가 아닌 내가 장애에 대해 쓸 수 있을까? 빌런이라도 괜찮은가? 어떻게 써야 할까? 아, 이래서 아예 등장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기 어려우니까.
그러다가 <찌찌레이저>의 주인공도 일종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슴을 치면 레이저가 나가니까 다른 사람과 앞으로 포옹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이는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주인공의 정면에 있는 걸 두려워할 수도 있겠죠. 혁명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여자의 가슴에서 젖이 아니라 레이저가 나오냐고 손가락질당할 수도 있겠다…싶었어요. 그러면서 그 세계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 소수자들, 장애인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 임신을 강요받지만 남자가 되고 싶은 사람, 두 다리를 강화하는 것보다 모터 휠체어를 타고 빠르게 달리고 싶은 사람 등.
<사이보그가 되다>에서는 장애인이 각각 장애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고 했습니다. 의족을 착용하더라고 거기서 벗어나 자신의 다리로 걷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고,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져 의족을 벗는 것에 대해 꺼리는 사람이 있다고요.
그렇다면 당사자가 아닌 내가 소설에 장애인을 등장시키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스쳐가는 인물 혹은 조력자로 장애인을 등장시키는 건 어떨까?
아직은 생각하는 정도이지만, 언젠가는 쓰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여기 같이 살고 있으니까요. 어린이도, 어른도, 노인도, 장애인도요.
뭔가 거창한 말을 한 것 같은데, 제 능력이 부족해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런 말을 구구절절하다니, 뭔가 부끄럽다는 생각에 지워버리고 새로운 걸 쓰고 싶어지기까지 합니다. 실은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것 같아 새로 쓴 월간 안전가옥도 꽤 있습니다.
책을 읽고, 소설을 쓰면서 제 세계가 아주 미약하게나마 넓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틀릴 수도 있고, 뒤로 갈 수도 있겠지만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제 소설을 읽는 분의 세계도 조금 더 풍요로워졌으면 좋겠어요.
언제나 행복한 나날이 되기를 바랄게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김청귤
“월간 안전가옥, 안녕! 해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