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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히어로의 일상성에 대하여

주요 토픽
슈퍼히어로
일상성
스파이더맨
본 대담록은 공모전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준비한 콘텐츠입니다. 마블, DC 등 각종 코믹스의 전통적인 캐릭터와 숨겨진 이야기들이 아주 많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히어로물을 많이 보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대담록이 공모전에 응모할 이야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만, 모든 것을 반영하기 위해 너무 애쓰시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콘텐츠는 작은 힌트일 뿐, 이야기를 끌어가는 키는 작가님의 것이니까요!
대담자 소개 홍지운 작가 최근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 출간. <이웃집 슈퍼 히어로>, <월간주폭초인전> 의 저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웹소설 전공 교수 손지상 작가 소설가,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의 회원, 만화평론가, ‘서울 웹진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진행, <서브 컬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의 저자 권나연 평론가 슈퍼 히어로를 너무 좋아해서 업으로 삼게 된 전문가이자 평론가 안전가옥 운영멤버 Teo(스토리 PD), Remy(기획 PD)
Remy: 안녕하세요, 저는 안전가옥의 기획 PD 레미입니다.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네 분을 소개합니다. 홍지운 작가님, 손지상 작가님, 권나연 평론가님 그리고 안전가옥의 스토리 PD 테오가 함께 자리해주셨습니다. 소개를 간략히 부탁드릴게요. 안전가옥에서 최근에 신작을 출간하신 홍지운 작가님부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홍지운 작가(이하 홍지운): 저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웹소설 전공 교수로 임용이 되어서 교육자로서 활동하고 있고, 예전에는 영화배우 김꽃비의 팬이라고 제일 먼저 말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웃음) 최근에 안전가옥에서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이웃집 슈퍼 히어로>, 슈퍼 히어로 앤솔로지에 참여해서 그때 나왔던 원고들을 취합해서 <월간주폭초인전> 이라는 제 개인단편집을 낸 적도 있습니다.
Remy: 히어로 전문 작가시네요.
홍지운: 하하하. 안전가옥에서 ‘슈퍼 히어로 연구소’라고 하는 워크숍도 진행했었습니다.
Remy: 나연님 소개 부탁드릴게요.
권나연 번역가(이하 권나연): 저는 슈퍼 히어로를 너무 좋아해서 업으로 삼게 된 전문가이자 번역가 권나연이라고 합니다.
Remy: 최근에 번역하신 작품은 뭐에요?
권나연: <토르>요. 토르의 여자친구로 등장한 제인 포스터가 2015년쯤, 토르의 묠니르 망치를 들어서 영웅이 되거든요. 직접. 그 시기를 다룬 만화를 제가 번역을 했어요.
Remy: 전형적인 히어로의 핸들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넘어간 느낌이네요.
권나연: 네. 이 작품은 굉장히 페미니즘을 의식했고, 실제로 페미니즘 성향의 독자층을 겨냥한 작품이었어요. 그것 때문에 반발하는 독자도 굉장히 많았어요.

슈퍼 히어로와 팬심

Remy: 언제 슈퍼 히어로물의 팬이 되셨나요?
권나연 : 제가 팬이 된 계기는 2012년쯤에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영화를 본 당시였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10년 이상 된 오래된 팬은 아니에요. 2012년 전까지는 슈퍼 히어로는 오락 영화고, 액션 영화였어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를 보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까 ‘원작에서는 피터 파커가 죽었대’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관객으로서 피터 파커가 뻔히 살아서 활동하고, 히어로가 세상을 구하는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원작에서는 그렇지 않더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인터넷에서 본 거예요. 너무 놀라서 바로 원작을 사서 읽어봤죠. 그런데 그래픽 노블은 제가 여태까지 읽어왔던 일본 만화, 한국 만화랑 굉장히 다르잖아요. 굉장히 투박하고, 거칠고. 주먹질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강렬함. 그런 거에도 굉장히 인상 깊게 느꼈지만, 스파이더맨이 정말 다른 차원의 적과 싸워요. 지금까지 만나왔던 어떤 적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서 싸우는데 자기가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너무나도 강력해서 도저히 이길 수가 없겠다고 생각할 때, 피터 파커가 하는 일은 공중전화에 전화를 걸어서 그 당시 별거 중이었던 부인한테 전화를 거는 거에요. 부인이 전화를 받지 않자 사랑하는 메이 숙모에게 전화를 한 뒤 자신을 아껴준 것에 대한 감사함과 사랑을 고백하고 끊어요. 그 장면이 저는 정말 인상 깊었어요.
지금까지 단순한 오락 영화이자 액션 영화였다가 그 장면에서 내 이야기와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캐릭터가 평소에 가까웠던 제 일상과 가깝게 매칭이 되더라구요. 어떤 종류의 연결고리가 느껴진거죠. 저도 당시에 공중전화를 진짜 많이 썼거든요. 2010년도인데도 핸드폰이 불안정한 상태여서 공중전화로 동전 넣어서 친구한테 전화했어요. 그런 걸 보면서 스파이더맨이 사실 나랑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은 캐릭터구나. 얘도 사랑을 아는 캐릭터고, 부인을 위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목숨을 다 내던지면서까지 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힘쓴 선한 사람이구나.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파고 들었던 것 같아요. 있는 책, 없는 책 다 사서 읽어보고, 되도 않는 영어 실력으로 사전 찾아가면서 읽어 본 게 계기였던 것 같아요.
출처: imdb.com
Remy: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을 만나기 전에는 영어를 잘하시는 것도 아니었고, 히어로 물도 좋아하지 않으셨는데 이 영화 한 편으로 삶이 변하게 되신 거네요.
권나연 : 맞아요, 맞아요. 그게 되게 드라마틱한 변화였던 같아요.
Remy: 공중전화 요즘에 어디 있나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일동 웃음) 손지상 작가님도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손지상 작가(이하 손지상): 저는 소설가이고,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의 회원으로 있습니다. 그리고 만화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요새는 성수동에 있는 ‘서울 웹진 아카데미’라는 곳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브 컬처에 관해서는 <서브 컬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라는 책을 냈습니다.
제가 슈퍼 히어로를 좋아하던 시기가 불운한 시기에요. 제가 살던 데가 군인 가족들만 사는 곳인데, 동네 서점에 아말감 코믹스의 일환으로 헐크랑 배트맨이 같이 나오는 에피소드를 무단 번역해서 <블랙맨>이라는 해적판 만화책이 나온 적이 있어요. 그 때는 제가 히어로들이 누군지 잘 모르고, 배트맨만 알아보니까, 왜 배트맨이 블랙맨이랑 나오는지 궁금하더라구요. 당시 헐크는 아예 못 알아보고, 조커가 초자연적 빌런이 돼서 문제가 일어나면 다른 코믹스의 등장인물과 합쳐진다는 소위 아말감 코믹스의 내용을 처음 본거죠. 그때부터 꾸준히 히어로물의 팬이 되었어요. 그런데 오랫동안 함께 이야기 나눌 이가 없어서 팬으로서 살기가 너무 어렵더라구요.
지금은 제가 가만히 있다가 ‘스파이더맨이 말이야’ 하면 다 알아듣는 세계가 되어서 너무 좋아요. 예전에는 설명을 전부 해야 했어요. 지금은 ‘아, 누구? 피터 파커!’ 이러면 너무 개운하죠. 설명을 안 해도 되니까. 코믹스도 전에는 제가 헌책방에서 어떻게 우연히 구해다 본 걸 반복해서 읽었는데 지금은 정식으로 나오니까… 게다가 제가 모를만한 것도 주석이 다 달려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요새는 정말 떠먹여 주는 대로 먹고 있습니다.

슈퍼 히어로의 조건, 슈퍼 히어로의 일상과 비일상

Remy: 세상이 진짜 히어로의 세상이 되었네요. 지금의 시국과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 세상이 어지럽거나 힘들 때, 히어로물이 득세한다고 하는 세간의 평도 있잖아요. 늘 사랑받는 이야기였기도 하지만, 요즘 특히 히어로가 득세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슈퍼 히어로는 그냥 히어로랑 다르잖아요.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기는 늘 존재하는데, 슈퍼 히어로라는 존재는 그냥 히어로와는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어떻게 정의 내리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손지상 : 제가 최근 <기획회의> 에 기고한 부분인데요. 슈퍼 히어로의 조건은,
1) 각별하게 다른 특수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 비일상과 연결되는 점이에요. 2) 이타적이고 영웅적인 롤모델이여야 해요. 히어로가 나쁜 짓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3) 공감 가능한 일상적인 면이 있어야 해요.
나연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 번째 특징이 특히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그 부분이 없으면 이야기로서 기능하지 않거든요. 아예. 이건 제가 만든 정의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스탠 리(전 마블코믹스 명예회장)가 슈퍼 히어로라면 응당 이 세 가지를 갖춰야 된다고 말했어요.
Stan Lee in Guardians of the Galaxy (출처: imdb.com)
Remy: 아, 히어로들의 대부나 다름없는 분이 말씀하셨군요.
손지상: 네. 기고한 글에 이미 썼지만 스탠 리가 말했고, 정말 공감하는 부분이라 다시 언급했어요. 어떻게 하면 이번 공모전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가이드라인으로서 슈퍼 히어로를 설명하기 쉬울까 고민해보았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슈퍼는 그 안에 캐릭터의 일상이건, 우리의 일상이건 실에서 벌어질 수 없는 모순되는 일이 벌어지면 그게 바로 ‘슈퍼’인 거 같아요. 단순히 컵을 5센티밖에 못 띄어 올려도 그건 슈퍼 한 거죠. 현실과 모순이 일어나잖아요. 중력 때문에 뜰 수가 없어야 되는데 뜬 거니깐요.
그리고 히어로는 행동의 동기가 이타적인게 아니라 결과가 이타적이어도 히어로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헐크는 화나면 그냥 다 때려 부수는데, 결과적으로 나쁜 놈을 때려 부수기 때문에 슈퍼 히어로 자리에 있는거죠. 더 넓게 본거지요.
‘베놈’도 동기가 나쁜 경우도 있겠지만 어쨌든 자기 행동, 윤리 코드가 있고, 그걸 통해서 결과적으로 이타적인게 우연히 일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본인이 갖고 있는 윤리 코드가 사회에 안 맞다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그 결론이 사회적으로 이타적이라고 판단되고 그 범주가 충분히 넓을 수 있거든요. 내 조직을 위해서 빌런이 된다던가. 이 정도 큰 범주면 그게 히어로라고 볼 수 있는거죠.
그리고 문제 해결이 미시적이어야 해요.
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해 ‘마틴 루터 킹’은 히어로니 다름없지만 슈퍼 히어로가 아닌 이유는 인종 차별을 ‘손가락을 탁 튕겨서’ 없애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타노스’가 슈퍼 빌런인 이유는 그 생각을 갖고 전쟁을 일으켜서 문명 하나 하나를 다 없애버리는 식으로 한 게 아니라 한 번 튕겨서 초자연적으로 다 없애려고 했기 때문에 슈퍼 빌런이 된 것이죠.
미시적으로 한 개인한테 환원, 의인화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안 그러면 일본 드라마로 치면 <한자와 나오키> 같은, 우리나라로 치면 부정한 검사의 비리를 없애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회파 같은 이야기가 돼요. 그런 이야기라 할지라도 모든 악의 뿌리는 ‘킹핀’ 같은 한 놈한테 집약되어 있어서 얘만 때려눕히면 모두 해결된다는 방식으로 전개해야 슈퍼 히어로 스토리가 될 수 있죠. 이야기적으로는 말이 되는데,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모순이 일어날 때, ‘슈퍼 히어로’이야기가 되는 거죠. 현실적인 이야기라면 그냥 히어로물이에요.
<에린 브로코비치>같은 영화를 예로 들어볼게요. 에린 브로코비치가 헐크였다고 해도 이야기 구조가 변하지 않아요. 어디까지나 한 명, 한 명씩 만나 다니면서 서명을 받고 해결하면 사회파 이야기가 돼버려요. 그런데 에린 브로코비치가 초인적인 능력은 없더라도 특별히 강한 총을 이용해서 오염물질을 일으키는 회사의 사장을 쏴 죽여서 문제를 해결해 버리면 슈퍼 히어로물의 서사 구조가 되는 거죠. 굳이 따지면요. 사실 이것도 모순이잖아요.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라는 말이 쉽게 나오는 이야기죠. 현실이 복잡하기 때문에 한 방에 해결해 줄 슈퍼 히어로가 필요한거죠. 현실적인 이야기를 원하신다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시면 되요.
Teo: 그 말씀을 종합해 보면 미시적인 것들이 슈퍼 히어로에 반영되는데, 그 목적은 독자들이 원하는 일상에서의 탈주, 비일상성에 있다는 말씀이시죠?
손지상: 혹은 독자가 느끼는 일상성의 물리적인 법칙을 벗어나는 것이죠.
Teo: 그것이 바로 독자가 바라는 특별한 방식의 위로기도 하구요.
손지상: 네, 그래서 슈퍼 한 거고, 마술적 리얼리즘인거죠.
Remy: 슈퍼 히어로 이야기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건 모순된 현실이 독특한 방식/비일상적 방식으로 해결되지만 그 때 사용되는 슈퍼한 힘은 엄청 슈퍼한 것이 아니라 현실과 조금만 달라도 된다는 말씀이잖아요.
손지상 : 그렇죠. 조금만 일상과 어긋나면 다 슈퍼 한 거죠.
홍지운: 공모전을 준비하시는 분들한테 약간 특화된 팁을 드리면, 슈퍼 히어로와 히어로의 차이점에 있어서 슈퍼함 / 비일상의 측면은 곧 일상과 모순된 이야기라고 했잖아요. 다시 말하자면, 일상과 비일상의 충돌을 이야기 속에서 다뤄주시면 쉽게 풀어질 거에요. 그 부분이 보통의 히어로에서는 나올 수 없는 매력이에요. 동시에 슈퍼 파워를 갖지 않은 인물들이 외전에서 단편으로 나오는데 그런 작품들도 슈퍼 히어로 카테고리 안에 합류를 시켜주잖아요. 이런 것만 보아도 장르적인 특수성에 있어서 슈퍼 히어로 쪽은 훨씬 관대한 편입니다.
만약 등장인물이 보통의 히어로면 장르적 특수성에 있어서 어느 정도 보편성을 감안해서 제약을 내부에 두고 있을 거예요. ‘이렇게까지 실험적이기는 어려워.’ 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을텐데요. 슈퍼 히어로는 어쨌든 장르적으로 훈련된 독자들이 있고, 이미 기대하고 오는 바가 있기 때문에 인물과 이야기에 더 관대할 거에요.
Remy: 아까 홍지운 작가님이 일상과 비일상을 충돌시키라고 하셨잖아요. 사실 슈퍼 히어로의 조건 중에 일상 감각이 있었잖아요. 이 때 말하는 일상 감각은 뭔지 조금 알겠어요. 클락 켄트가 신문사에서 일하는 것과 같은 일상이죠. 공중전화에서 전화하는 것 같은. 비일상은 어떤 종류일까요? 비일상은 범주가 너무 다양하고 서로 상상의 영역이 다를 것 같아서요.
홍지운: 기본적인 형태로 이야기를 하자면 슈퍼 히어로는, 체제에 편입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슈퍼 히어로 활동은 범죄입니다. 자경단 활동은 범죄죠. 어쨌든 다 그걸 떠나서 이 사람들은 불법적인 일을 하는 거고, 체제에 편입되지 못한 채, 체제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체제를 벗어나는 자기 자신이 문제에 뛰어 드는 거죠. 이 과정에서 일상과의 충돌이 있습니다.
당연히 경찰한테 쫓기고, 군대한테 쫓기는 것도 추격의 일부겠지만, 일상생활에서도 당연히 문제가 있을 거예요. 내내 불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소파에 앉을 수도 없고, 카페에 가서 문 열고 ‘안녕하세요. 커피 하나 주세요.’ 라고 했을 때, 아이스커피가 바로 핫커피가 되니깐요. 이런 식으로 일상에 편입되지 못한 채, 충돌하고 돌출되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손지상: 실은 이게 일상 감각이에요. 19세기 말에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을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이야기했는데, 일상적으로 사람이 한 번 본 거를 기억으로 대체하거든요. 자동적으로 반복하는 거죠. 그걸 새삼 일부러 낯설게 만들어서 브릿지하게 해서 내가 원래 이랬구나, 하고 일상을 재확인한다는 거죠.
무슨 말이냐면 그냥 어떤 아저씨가 지나가다가 깡패한테 얻어맞아서, 아내한테 전화해서 ‘여보 사랑해’ 이러면 우스꽝스럽고, 이게 뭐야 오그라들게 되지만, 스파이더맨이 그런 전화를 하면 있는 그대로 자기 일상으로 연결이 되어서 낯선 환경에서 다른 걸 발견하기 때문에 더 솔직하게 감동할 수 있죠. 일상과 비일상이 부딪히지 않으면 애초에 일상조차 성립되지 않는 거죠.
자기가 평소 살고있는 일상을 곱씹게 하려면 비일상과 부딪히게 해야지 그냥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서술해 나가면 그러면 독자에게 아무런 의식을 못 일으키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상 감각을 주지 못해요. 단순히 현실에 던져 놔라, 이런 의미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자기 일상을 관찰하고 쓰라는 거죠.
홍지운: 몸이 불타면 소파에 앉지 못한다고 이야기했었잖아요. 손지상 작가님이 하신 이야기를 반영하면 그냥 어떤 슈퍼 히어로가 있다 정도만 생각하겠지요. 그런데 불타는 몸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소파에 앉지 못했다 라는 장면이 나오는 순간, ‘어, 내가 소파에 앉을 때 뭐 했더라? 나는 그냥 푹 앉았는데. 그 질감이, 푹신한 엉덩이의 감각을 이 사람은 즐기지 못한단 말이야?’ 라는 것으로 연결될 것이고, 동시에 자기가 그렇게 앉지 못했던 순간이 무언가 있었다면은 그때 더 강렬하게 연결이 되겠지요. 예를 들어, 반대로 반 아이들이 왕따를 하는 바람에 물을 뒤집어 써가지고 소파에 앉지 못하는 상황에 있었다. 그 때, 그 순간 ‘나도 앉지 못했는데. 그 때 너무 싫었어. 짜증났어. 괴로웠어.’ 라는 공감대가 확 살아나죠.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 있는 슈퍼 히어로,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 

Remy: 작가님은 스파이더맨을 좋아한다고 하셨잖아요. 거기에서 일상과 비일상이 만나는 순간이랄지 이 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손지상: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 있는 스토리의 시초가 스파이더맨이에요. 그런 말 하잖아요. 찌질할대로 찌질한 인생을 사는 피터 파커라고. 고통을 계속 받아야 되는….
Remy: 그런 피터 파커 얘기를 나연님께서 조금 더 들려주세요.
권나연: 피터 파커 같은 경우는 공감대 형성에 있어서 거의 최초의 히어로에요. 최초의 소년, 최초의 10대 히어로에요. 이전까지는 10대 코믹스에서 나오는 10대는 항상 사이드 킥이었어요. 캡틴 아메리카의 버키, 배트맨과 로빈 그러니까 청소년 혼자서 뭔가를 주도적으로 세상을 바꿔나갈 힘이 있다는 시각은 없었는데, 피터 파커가 최초였지요. ‘15살에 거미에 물려서 삼촌이 죽고, 그 죽음으로 인해 책임감을 얻고, 내일을 나아갈 희망과 힘을 얻는다.’ 그런 스토리를 시작한 게 피터 파커가 최초였어요.
Spider-Man: Far from Home (출처: imdb.com)
그 이후에도 굉장히 소소한 일상의 어려움들이 있잖아요. 등록금을 못내서 절절매고, 월세를 못내서 절절매고, 그런 일상들의 어려움과 슈퍼 히어로가 느끼는 비일상의 어려움들이 공존하는 스토리 라인이 스파이더맨의 대표적인 스토리 라인이에요. 이 대화 맥락에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슈퍼 히어로라는 단어의 뜻을 제가 생각해봤는데, 우선 국어 사전에서 한 번 검색을 해봤어요. 영웅을 검색해 봤더니 사전적 의미가 특별한 힘이나 재능이 있어서 보통 사람이 해내지 못 하는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보면 스파이더맨 뿐만이 아니라 굉장히 여러 가지 폭이 넓어질 것 같아요. 이번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공모전을 준비하시는 분들께서도 슈퍼 히어로를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보셨으면 하는 게, 디즈니 뮬란 같은 경우도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있고요, 그리고 헝거 게임의 캣니스도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있고.
일상과 비일상을 공존하면서도 보통 사람들은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저는 다 슈퍼 히어로라고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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