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간 안전가옥에서 그랜드 크로스가 어쩌니 하며 올해 대운이 트이는 것 같단 망발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가 대한민국을 휩쓸면서 해외 출장은 고사하고 확진자가 연거푸 나오는 아파트에 자가격리 당한 채 하루하루 체온계만 들여다보면서 36.9도면 문제가 있는 걸까 아닌 걸까 고뇌에 빠지는 처지가 되었다. 이래서 예로부터 현인들은 말조심을 하라고 했거늘…
코로나는 이제 더 이상 중국과 아시아 뿐만 아니라 중동, 유럽 등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10년 사이클의 경기침체를 벗어날 지도 모른단 생각에 신나 있던 정부 지도자들에게 찬 물을 끼얹고 있다. 그래서 무책임한 민족성의 상징이 된 이탈리아는 검사 제한을 검토하고 있고, 트럼프는 증시 패닉을 야기한 CDC에게 격노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이런 암담한 글로벌 뉴스는 잠시 뒤로 하고, 일단 확진자가 하루가 다르게 폭증하는 한국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러니저러니 하더라도 한국의 코로나 사태의 악화에는 신천지라는 컬트 집단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예전부터 간간히 기독교를 공략한다는 소문만 들어보았던 이 집단은, 대구 경북 지역을 코로나로 초토화하면서 순식간에 전국민의 관심을 받는 존재로 급부상했다.
신천지의 인상적인 점은 젊은 청년들의 비중이 꽤나 높다는 점이다. 요즘 젊은 세대가 전반적으로 종교에 무관심해지고, 회의적이 되는 것을 고려해보면 의미심장한 일이다. 신천지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나오는 이런저런 기사들을 검토해보면, 신천지가 어느 시점부터 적극적으로 대학생들을 집중하는 타겟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전략을 살펴보면, 어디서 많이 본 전략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신천지가 대학생, 특히 이제 갓 입학한 대학생들을 노리는 이유는 그들이 시간이 넉넉하여 노동력으로 쓸 수 있고, 입시 등을 거치며 낮아진 자존감으로 회유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대학교를 들어왔는데 정작 다음 갈 곳은 모르겠고, 불투명한 경제 상황과 갑작스럽게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책임감, 하지만 그런 그들을 존중해주지 않는 수직적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들은 그들을 ‘구역장’ ‘부장’ 등 중책을 맡기고 띄워주며 우정과 소속감과 사명감을 부여해주는 신천지가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신천지는 한번 포섭하고 나면 어지간한 로맨스 호러 스토리의 집착하는 남주인공 뺨치는 가스라이팅으로 그들의 가족, 친구 등 기존 관계를 교묘하게 끊고, 병은 참회를 통해 낫는다는 등의 선동으로 의료 등 기존 상식 체계를 부정하게 만들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로 만들어버린다.
신천지의 해악은 이 이외에도 몇 절도 더 읊을 수 있지만, 내가 느꼈던 기시감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포교 전략에서 온 것이었다.
세월호 집회에 봉사를 나가던 어떤 심리상담자 분께서 집회에 난입하여 난동을 부린 태극기집회 노인분과 나눈 긴 대화에 대해 말씀 주신 적이 있다. 처음에 무척 경계하던 그 분은 설득이나 회유가 아닌, 그저 대화를 이어 나가는 심리상담자 분께 서서히 마음을 열다가 2시간이 지나 마침내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분은 은퇴 이후 어떻게 자신이 세대차이로 인하여 가족들 사이에서 철저히 소외와 무시를 당하는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 그저 늙어갔는지, 그리고 그러던 노인들이 모여 있는 경로당에 태극기 집회 관계자들이 찾아와 그들을 위대한 세대로 극찬하며 큰 절을 올리고 따뜻한 밥과 용돈을 주며 ‘빨갱이’들에 대한 분노를 부추는 지를 고백했다. 그리고 비록 자신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직접적인 감정은 없지만, 자신에게 ‘존중’ 받는 느낌을 준 태극기 집회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낮은 자존감과 남아도는 시간에 고통 받다가 자신에게 사명감을 주고 잘 대해준 집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의 이야기. 어디서 많이 듣지 않았는가?
결국 우리 나라를 뒤흔든 코로나 사태의 근간에는 이 한국 사회에 만연한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이미 폭발적으로 확산해 있던 컬트들이 있는 것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 나라와 컬트가 이제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지점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종교적인 부분을 빼고 본다면, 컬트는 어떤 대상에 대한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믿음을 갖는 사람들과 그 구조를 통해 이익을 취하는 리더쉽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한국의 대체 어느 부분이 컬트가 아닌 걸까? 입시를 위한 공포를 자극하는 학원가와 그에 모든 것을 바치는 학생과 부모들, 현실의 문제 해결이나 유권자가 아닌 계파와 코드를 더 중요시하는 리더 중심의 정치인들, 극소수의 사람들이 찰나만 누리는 인기를 위하여 돈과 젊음과 모든 것을 바치는 연예지망생들과 그를 위해 재산과 시간을 바치는 팬들,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투자자들의 돈과 직원들의 노력을 착취하며 교주처럼 군림하는 스타트업들의 대표, 그리고 결정적으로 ‘애국심’과 ‘단일민족’의 이름으로 소수자들을 박해하고, 외국인들을 공격하며 왜곡된 과거의 영광을 위해 미래를 포기하는 자칭 애국인들까지.
비록 코로나가 하나의 컬트에 이목을 집중시켰을 지언정, 진짜 컬트의 본체는 이 한국 사회가 아닐까 싶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가디언 멤버 OU
"생각해보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받기 전에, BTS가 유튜브를 휩쓸기 전에, 한참 건너뛰어서 욘사마가 일본을 휩쓸기 전에, 문선명과 통일교가 해외를 휩쓸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한류의 시작은 K-컬트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