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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해 벌써 열두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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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놔두면 이 인간은 시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나>의 <매뉴얼>을 만들게 된다면 한 41페이지 정도에는 이 말이 들어갈 것이다. 그러니 42페이지에는 <나>가 시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예시들이 소개되겠지. 42페이지에 들어갈 수 있는 내용의 스케치를 여기에 남긴다.
지난달에 디아블로2에 빠져 시력이 눈에 띄게(이상한 말이네) 감퇴했다는 이야기(https://safehouse.kr/d5171969-6f95-44da-b3df-c3afeda262d5)를 했는데, 이 글이 릴리즈 되고 얼마 안 지나 블리자드 사에서 디아블로2:리저렉티드를 2021년 내에 공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니 제가 이 게임 다시 시작한 거 어떻게 알고? 하며 화들짝 놀랐지만 이 말을 블리자드 관계자 분들이 들으신다면 아니 댁이야말로 우리가 이 게임 리메이크 중인 거 어떻게 알고; 라고 생각하시겠지. 이건 약간의 시차가 만든 좀 재미있는 우연을 내가 주관적인 필연을 추출해내려 하기 때문에 (나한테만) 특별하게 느껴지는 일일 뿐임을 잘 안다. 아마 “동시성(synchronicity)” 현상? 증상? 의 일종일 것이고 이에 대한 이야기도 이미 한 적 있다. (https://safehouse.kr/baecd304-1aba-4ce6-8adf-02bd6e0c3f58)
결단력이 부족한 편이어서 중요한 결정이 필요할 때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는 편이다. 이때 다른 사람이란 리터럴리 다른 사람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 대신 생각해주기 영 어려운 사항을 고민할 때에는 (가령 나 자신의 국적이나 가족계획이나 생사여탈권(?) 같은 문제는 남과 의논하기도 어렵고 맡기고 싶지도 않은 법이라) “2040년의 내가 이 결정을 기뻐할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을까 같은 근본적인 궁금증은 잠깐 차치하고, 당장의 이 결정이 2040년의 나에게 보탬이 될지 그렇지 않을지만 생각하는 것이다.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나 새옹지마의 고사의 역을 상상해보는 셈이라고 하겠다. 2021년 현재의 나를 기준으로 2015년이나 2011년의 내가 한 결정들을 되돌아볼 때 역시 그때 그건 잘 한 결정이었어, 또는 그땐 그 일 때문에 죽도록 고생했지만 그 결정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겠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이치와도 같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과거의 결정을 크게 후회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2021년 3월 2일 22시 09분 경 클레어 피디님께서 (지금으로서는 마지막이라고 표현될) 2021년 2월분 월간 안전가옥 원고에 대해 물으신 김에 부랴부랴 쓰기 시작한 이 글은 같은 날 23시 11분에 이 문단에 이르렀다. 이 원고는 앞으로 48분 안에 마무리지어져야 한다.
펀 팩트: 직전 문단은 이 다음 문단보다 나중에 쓰였다. 오려내기와 붙여넣기로 순서를 앞당겼다. 나는 이게 한 원고 안에서의 시간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작가가 직접 털어놓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시간여행.
앨런 무어&데이브 기번스의 그래픽 노블 <왓치맨>에는 12시 직전을 가리키는 시계의 모티프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건 시계가 12시를 가리키면 일어날 사건에 대한 불길한 암시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12시라는 시간이 도래하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는 것이 나의 의견.
지금까지의 지구 역사를 24시간으로 환산하면 인류 문명의 시작은 11시 50분도 넘어서야 시작되는 셈이라는 얘기도 있다. (앨런 무어도 아마 이 비유에서 <왓치맨>의 시계를 떠올렸을 것이다.) 인류 문명은 지금도 아주 조금씩 길게 이어져가고 있으니 24시간제라는 한정된 체계로 환산하면 인류 시작은 1분 1초 1밀리초 1마이크로초 1나노초… 씩 앞당겨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12시가 오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12시 전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늘이는 것… 이라는 의견이다.
나는 지금까지 월간 안전가옥 원고를 16개 제출했는데 내 구글 드라이브 “월간 안전가옥" 폴더에는 원고가 17개 있다. 여기에는 내가 안전가옥과 함께한 지 어느덧 1년 반이 되었다는 의미가 있고 그중 한 번은 쉬었다는 의미도 있으며 그 한 번은 원고를 쓰다 말고 이번 달은 쉬겠다는 말씀을 드렸던 때라는 의미도 있다. 2020년 5월호에 제출하려다 만 그 원고의 제목은 “낯선 천장이다”이며 지금 다시 열어보니 커서가 “실시간 고통정보" 라는 말 옆에서 깜빡이고 있다. 그 ‘실시간'의 고통이 무엇이었는지를 마저 쓰지 않아서 내가 무엇을 괴로워했는지는 잊었는데, 글을 쓰다 말고 테오 피디님께 이번 달은 안 되겠다는 메시지를 보낼 만큼 고통스러웠다는 것은 기억해낼 수 있다… ‘무엇을’은 잊었지만 ‘얼마나’는 기억이 난다는 건 쓰다 만 원고 자체가 타임캡슐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 멋진 마무리를 짓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라고 누가 과거의 저에게 좀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정도로 상세한 <나>의 매뉴얼을 갖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그것의 저자는 나 말고는 아무도 될 수 없을 것이며 지금의 나로서는 그런 매뉴얼을 진심으로 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데 (잠깐만요, 벌써 42페이지의 초안을 다 잡았는데 아깝지 않나요?) (네, 마저 쓰고 싶은 생각이 당장은 들지 않네요) 또 모르지, 언젠가 이 원고를 다시 열어보면서 음 이거 재미있네 이걸 토대로 뭔가 하나 뚝딱 해 볼까 그런 충동을 품을지도.
인간은 시간에 참 잘 속는 종족이지만 대부분은 시간 그 자체에 속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예측불가함에 속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또 나는 나의 결함을 인간 보편 일반론으로 만들면서 안심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인 것 같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박서련
“요새는 슬라임 주무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