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질주
무너져 가는 건물에서 탈출하라!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아는 두 여성의 짜릿한 연대
우리는 ‘이상기후’가 그리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산다. 이례적인 수준의 기온과 강수량, 짧아지는 봄과 가을에 꽤 익숙해졌다.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의 열일곱 번째 책 《전력 질주》는 열흘째 이어지는 폭우로 시작되는데, 주인공들은 힘들어할지언정 크게 놀라지 않는다. 수년째 큰 폭의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있는 우리가 그러하듯이.
《전력 질주》의 주인공 진과 설은 아마추어 스포츠인으로, 야외에서 운동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국내 최대 규모의 스포츠센터를 찾는다. 규모뿐 아니라 설비까지 훌륭하다는 사실에 만족한 것도 잠시, 이내 센터 곳곳이 무너지고 어디선가 흘러들어 온 흙탕물이 바닥을 금세 뒤덮는다. 진과 설은 살아서 건물 밖으로 나가기 위해, 마음속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재난 현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각자 다른 길을 걸어왔던 두 여성이 몸을 던져 서로를 구하게 되기까지의 여정은, 전 지구적 재난 상황의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간직하고 무엇을 넘어서야 하는지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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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목차
링 · 6p
윕 킥 · 22p
워밍업 · 34p
드래프팅 · 58p
백 크롤 · 70p
신 스플린트 · 80p
터닝 포인트 · 90p
힐 풋 · 102p
포인트 투 포인트 · 112p
프리 릴레이 · 124p
하이다이빙 · 140p
파트렉 · 158p
에필로그 · 174p
작가의 말 · 182p
프로듀서의 말 · 186p
작가 소개
강민영
글 쓰고 글 엮는 사람. 제3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영화 매거진 《cast》의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프리랜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출간작으로는 경장편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 에세이 《자전거를 타면 앞으로 간다》가 있으며, 리디북스의 ‘우주라이크소설’을 통해 중·단편소설을 발표하고 있다.
줄거리
진의 취미는 바다 수영이다. 그러나 열흘째 폭우가 이어지는 통에 해수욕장에 가는 것은 고사하고 서울을 벗어나지조차 못한다. 하는 수 없이 실내 수영장을 찾아 나선 진은 국내 최대 규모의 스포츠센터로 이름난 ‘송도 트라이센터’에 가 보기로 한다. 비슷한 시각에 달리기를 좋아하는 설 또한 트라이센터로 향하는데, 그곳에 만족스러운 수준의 실내 트랙이 갖추어져 있다는 정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센터 지하의 각기 다른 층에서 몸을 움직이던 두 사람은 원인 모를 굉음이 들려오고 바닥에 흙탕물이 차오르자 지상으로 나가려다 서로를 마주친다. 아마추어 스포츠인으로서 얼굴만 아는 사이였던 둘은 그 순간부터 생존을 건 탈출에 나선 동료가 된다.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움직임, 그 움직임의 한계
《전력 질주》의 두 주인공, 진과 설은 아마추어 스포츠인이다. 진은 마스터스 수영 대회의 전 연령대 개인혼영 기록을 한 번에 갈아 치울 만큼의 실력자다. 뛰어난 달리기 선수이자 러닝계의 인플루언서인 설은 SNS에서 달리기에 대한 정보를 친절하게 안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영과 달리기는 생활 운동이기도 하지만 기록을 측정하고 순위를 다투는 경기 종목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현재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진과 설이 운동을 시작한 이유 또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함이었다. 진은 만성 통증 때문에 정형외과를 찾았다가 “실제 나이는 20대인데, 신체 나이는 80대라고요. 지금까지 이런 몸 상태로 어떻게 버텼어요?”라는 호통을 듣는다. 다치지 않고 몸을 단련할 수 있다며 의사가 권해 준 운동이 바로 수영이었다. 포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설은 지긋지긋한 바닷가에서 짧게나마 벗어나고 싶어 달리기를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육상부 입부를 권할 때마다 “그러면 다른 도시로 전학 갈 수 있나요?”라고 묻곤 했다.
두 사람은 벽을 넘고 성취를 맛보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학창 시절, 처참한 달리기 실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진은 타고난 재능으로 빛나는 이들을 불편해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본인 또한 수영에 탁월한 재능이 있음을 인정받았음에도 마음속 깊이 뿌리박은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렸을 때 사랑하는 존재가 거친 파도에 휩쓸려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했던 설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달리기 연습을 하다 작은 개천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불안감, 구역질, 호흡곤란에 시달린다.
맞잡은 손끝에서 시작되는 실질적인 변화
진과 설이 찾아간 국내 최대 규모의 스포츠센터가 재난 현장으로 바뀌자 둘의 마음속 문제들은 속속 겉으로 떠오른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흙탕물이 쏟아지니 한시라도 빨리 대피해야 하는데, 오랜 트라우마에 발목을 잡힌 설은 그만 멈춰 서고 만다. SNS를 통해 늘 밝고 화사한 모습을 보여 주는 설이 내심 ‘재수 없다’고 생각해 왔던 진은 결정적인 순간에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설을 향해 진저리를 친다. 차마 혼자 달아날 수 없어 설을 잡아끌면서도 ‘좋은 구석이 없어, 도대체가. 좋아할 수가 없어, 정말.’이라고 되뇐다.
두 사람은 재능, 성격, 취향 면에서 정반대라 해도 무방할 만큼 다르다. 너무도 다르기에 둘은 오히려 서로를 의지하는 사이가 된다. 자신의 약점을 가장 잘 보완해 줄 존재가 상대방인 것이다. 함께 움직이는 동안, 영영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상대방의 마음은 점차 이해가 가능한 마음으로 변해 간다. 진과 설은 스포츠센터 내부에 널브러져 있는 기구들을 넘어 전진하면서 도저히 넘을 수 없었던 마음의 벽까지 서서히 넘어선다.
‘기후 우울’이라는 용어가 있다. 기후 위기에 따른 불안감, 무기력감, 절망감이 일으키는 우울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타인과의 연결을 권한다. 상황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 작은 노력이 모이면 큰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직접 확인하면 안정을 찾고 유의미한 실천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맞잡은 손은 지극히 현실적인 구원이 될 수 있다. 우리 자신에게도,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에게도. 《전력 질주》의 두 주인공이 건네는 바로ᆢ 그 메시지다.
책 속으로
진이 속해 있는 동호회 사람들은 혼자 바다 수영을 장시간 유려하게 해내는 진을 바라보며 ‘타고났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뭐 하나 특출나게 잘하는 거 없이 살아온 진에게, 그 말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저런 말을 들을 수 있다니. 사람들이 종종 내뱉는 그 말에, 진은 온몸에서 오스스 올라오는 소름을 느꼈다.
p. 32
“아, 그거요. 네. 뭐… 지지난 주엔가 그때 한번 신고 왔죠. 그때 이렇게 쭈와악-”
설은 발로 반원을 그리며 미끄러지는 시늉을 했다. 말 그대로 ‘쭈와아악’ 소리를 내며 길 위에서 잠깐 굴러야 했던, 열흘 전의 출근길. 우중 런을 경험해 본 설이 자신 있게 집을 나선 참이었다. 매일 왕복 10km를 뛰느라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길이었는데, 하필이면 예상외의 물웅덩이가 나타날 줄이야. 갈색 우레탄 바닥 위로 철푸덕 엎어진 설은 그 자리에서 헛웃음을 지었다. 뛰다가 넘어지는 게 도대체 얼마 만인가. 이 망할 놈의 비.
p. 37
‘애초에 저렇게 태어난 것 같아. 그리고 저 사람은 뭘 해도 잘할 거야.’
진의 수영 기록 따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진의 존재 따위를 설이 신경 쓸 리 없다. 설은 진과는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니까. 진은 저도 모르게 ‘부럽다’고 생각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미 설의 SNS를 보며 수도 없이 한 생각이다.
p.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