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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빛나는

발행일
2022/10/27
장르
스릴러
미스터리호러
작가
김혜영
분류
쇼-트
보도자료
[안전가옥]보도자료_푸르게 빛나는.pdf

푸르게 빛나는

“그런 건 없다니. 내가 봤는데, 내가 겪었는데, 내가 무서운데.”

아득한 비현실과 치밀한 현실, 그 낙차만큼의 공포 청년 세대의 슬픔과 두려움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신예의 첫 단편집
계단 한 칸을 뛰어내리는 일이야 간단하지만 번지점프대에서 뛰어내리기는 어렵다. 낙차가 큰 탓이다. 출발 지점과 도착 지점 사이가 멀수록 불안감은 커진다.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의 열다섯 번째 작품집 《푸르게 빛나는》은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서 시작되어 지구 밖의 존재를 암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가족, 친구와 멀어질지 모른다는 평범한 불안은 어느새 무자비한 상대에 의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아득한 공포로 바뀐다. 폭이 큰 감정 변화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고 있노라면 우리가 청년 세대의 슬픔과 두려움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또 한 명의 근사한 신예 작가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외로운 아이들의 밤에 찾아온 불청객을 그린 〈열린 문〉, 땀과 체취 때문에 외롭게 살아 온 여성이 정체 모를 이로부터 기묘한 물을 받으면서 겪게 된 인생 역전을 담은 〈우물〉, 신축 아파트에 생겨난 신종 벌레의 정체를 파헤칠수록 파국에 가까워지는 부부를 다룬 〈푸르게 빛나는〉 등의 세 작품이 실려 있다. 각 작품은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완결성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들로서의 연결성을 함께 지닌다. 기묘하게 낯설어 매혹적이기까지 한 작품 속 세계는 쇼-트 시리즈의 다음 작품집 《그분이 오신다》에서 더욱 확장된다.

지금 《푸르게 빛나는》을 만나보려면?

종이책

목차

열린 문 · 6p
우물 · 20p
푸르게 빛나는 · 88p
작가의 말 · 184p
프로듀서의 말 · 188p

작가 소개

김혜영

괴물을 사랑한다. 이 말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체를 뛰어넘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영상과 글을 넘나들며 작업을 하고 있다. 단편영화 〈BJ PINK〉 와 〈소년의 자리〉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고,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단편 수상 작품집 2021》에 수록된 단편 〈토막〉과 안전가옥 앤솔로지 《호러》에 수록된 단편 〈습습 하〉를 집필했다.

줄거리

〈열린 문〉
초등학생 세나의 집은 건물 바깥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5층에 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심심해하던 세나의 오빠는 도둑 잡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며 야구방망이를 들고 현관문을 연다. 열린 문 사이로 도둑이 들어오면 때려잡겠다는 것이었다. 두 아이는 잠들기 전 가볍게 시간을 때울 만한 일을 원했을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머릿속에 소용돌이치는 의문 중 단 하나도 입 밖으로 낼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우물〉
주영은 외롭게 살아왔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리고 체취가 너무 심한 체질을 타고난 탓이다. 친구라고는 냄새를 거의 맡지 못하고 수시로 재채기를 하는 만성 축농증 환자 한 명뿐이다. 친구가 수술을 받은 뒤 둘 사이는 멀어지고, 주영은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주영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며 검은 물을 마시라고 권한다. 속는 셈 치고 그 물을 마셨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 물을 구하는 데 왜 우비와 장화와 삽이 필요한지를.
〈푸르게 빛나는〉
여진과 규환은 신혼부부다.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로 이제 막 이사했다. 임신 중인 여진은 밤중에 깨어났다가 주먹만 한 푸른 구체를 보고 태몽을 꾸었다고 규환에게 알린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여진은 집 안 곳곳에서 새파란 점 같은 벌레들을 발견한다. 반면 규환의 눈에는 여진이 말하는 벌레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규환이 보기엔 여진의 불안이 지나치고 여진이 보기엔 규환이 너무나 무심하다. 둘 사이가 조용히 멀어지는 사이 아파트 주민들은 세입자가 배제된 단톡방에서 아파트 내 각종 사건 사고를 비밀스레 공유한다.

코즈믹 호러, 거대한 공포로 평범한 불안을 말하는 장르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라는 장르가 있다. 문자 그대로 ‘우주적인 공포’를 이야기한다. 이 장르에 등장하는 공포의 대상은 상식 밖의 무언가이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나타났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미지의 존재가 너무나 압도적이기에 대항은커녕 사태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 아득한 장르는 뜻밖에도 평범한 감정을 정확히 파고든다. 삶 전체에 낮은 배경음처럼 깔려 있는, 완전히 해소할 수 없는 불안을 짚어 내는 것이다.
불안의 이유 ① 가까이하고픈 대상과 멀어질 때
우리는 언제 불안을 느낄까? 《푸르게 빛나는》 속 주인공들은 모두 가까이하고픈 대상과 본의 아니게 멀어진다. 〈열린 문〉의 주인공 남매는 초등학생임에도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 아빠는 집을 나가 버렸고 바쁘게 일하는 엄마는 늘 피곤해한다. 심각한 액취증 환자인 〈열린 문〉의 주영은 만성 축농증 환자인 친구의 코 수술을 말린다. 후각을 되찾은 친구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서다. 〈푸르게 빛나는〉에 등장하는 신혼부부 여진과 규환은 배 속의 아이가 잘못될까 봐,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 따돌릴까 봐, 경기도에서 서울로 영영 이사하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한다. 걱정이 깊어지는 동안 두 사람 간 감정의 골도 점차 깊어진다.
그렇게 10대, 20대, 30대를 지나는 동안 모두가 알게 된다. 가족과 친구에게 사랑받는 것이 썩 당연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호감을 얻으려는 노력이 언제나 보답받지는 못한다는 것을. 지금 애정을 주고받는 사이라 해서 미래에도 그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계속 불안에 떨며 발버둥 쳐야 한다. 어째서 발버둥까지 쳐야 하는지 의문을 품어 볼 수는 있다 해도 ‘인간에게는 사랑이 필요하다’라는 대전제에 대항하기란 불가능하다.
불안의 이유 ② 멀리하고픈 대상이 다가올 때
사람들은 멀리하고픈 대상이 다가오는 것을 감지할 때도 불안해한다. 《푸르게 빛나는》 수록작 주인공들의 일상은 코즈믹 호러의 장르 특성에 충실한 미지의 존재들을 만나면서부터 무너진다. 지구상의 생명체와는 다른 외양을 지닌 존재는 호기심에 이어 일종의 매혹마저 일으키지만, 인간을 무심하게 해치는 모습이 드러남과 동시에 바로 공포의 대상이 된다.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고 일단 마주쳤다면 피할 수 없다.
살아남아도 문제다. 다른 사람에게 경험을 공유하고 위험을 알리려던 인물들은 난관에 봉착한다. 인간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이야기인 탓에 아무리 설명해도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푸르게 빛나는〉의 여진은 자신의 경험담을 듣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고 대꾸하는 남편 규환을 향해 절규한다. “내가 있다는데! 내가 봤다는데! 내가 경험했다는데, 내가 무섭다는데!” 여진은 공포에 이어 고독까지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이른다. 작중의 상황이 조금 더 극적일 뿐 비슷한 일은 일상에서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나를 온전히 수용해 달라는 부탁의 끝에는 절망이 있다. 이 절망은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이어진다.

해결책은 없다는 쿨한 인정

불안을 해소할 방법은 없을까? 코즈믹 호러는 명쾌한 해결을 말하는 장르가 아니다. 그리고 사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모른다. 가장 현실에서 먼 장르 중 하나로 보이는 코즈믹 호러는 이러한 접근법으로 현실을 ‘쿨하게’ 반영한다. 이를테면 ‘만들어 낸 이야기’라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아찔한 번지점프대인 셈이다. 불안을 맛보고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호러 독자들은 기꺼이 이 번지점프대에 서서 뛰어내릴 준비를 할 터다.
《푸르게 빛나는》이 그저 허황된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정교한 재현이다. 세 작품의 주인공들은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공통점이 많지 않다. 연령대와 사회적 위치가 각각 다른 인물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어조와 상황을 채택해 몰입도를 높이는 솜씨를 보면 다음번에는 작가가 어떤 세계를 펼칠지 절로 궁금해진다. 뒤이어 출간될 단편집 《그분이 오신다》가 이 작품집과 세계관을 공유하니, 머잖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타박. 타박.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다다. 누군가가 벌써 한 층을 다 올라왔다. 다다. 아래층 사람일까. 아니면 집 나간 아빠? 거침없이 다음 계단을 밟는 발소리가 들렸다. 다다. 아니면 진짜로 엄마가 이제야 집에 돌아오는 걸까?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다다. 아니면 정말로 열린 문을 지나치지 못하는 도둑이 오는 걸까? 다다. 무언가가 오고 있었다. 다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다다. 온다.
p. 16 〈열린 문〉
입안에 왈칵 들어오는 검은 물엔 어쩐지 점성이 있어 자동차 엔진오일이 입속으로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아니, 바다에 버려진 폐기름이 이런 느낌일까. “끝까지.” 단호한 여자의 말에 나는 꾸역꾸역 삼켜 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액체가 위장 속에서 요동쳤다. 울컥울컥하며 위쪽으로 역행하는 액체의 움직임에 나도 모르게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식도가 들어온 것을 내보내려는 듯 수축하듯 꿀렁이며 턱까지 액체를 밀어 보냈다. “삼키세요.”
p. 51~52 〈우물〉
시간이 지날수록 벌레의 존재는 공고해져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환은 신종 벌레를 단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었다. 남들은 존재를 알고 중요한 문제라 이야기하는데 자신은 전혀 듣지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것. 바로 옆 사람이 경험을 실감 나게 전하고 두려움을 표현하는데 자신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 어느샌가 규환은 벌레 이야기가 여진의 임신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p. 129 〈푸르게 빛나는〉
[105동 정하늘: 우리 아파트 인기가 많나 봐요.구급차 하나 왔다고 이 난리…ㅠ;;] [101동 박호영: 무슨 일인지 아는 분 계세요? 경찰차까지 있으니 무섭네요.] [카페지기: 확인 중입니다.] [103동 이민영: 그 여자 때문 아니에요? 미친 여자 돌아다녔잖아요.] [105동 정하늘: 미친 여자요…?] [채팅방 관리자가 메시지를 가렸습니다.] [채팅방 관리자가 메시지를 가렸습니다.] [채팅방 관리자가 메시지를 가렸습니다.] [채팅방 관리자가 메시지를 가렸습니다.] [카페지기: 집값 지키셔야죠.]
p. 164 〈푸르게 빛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