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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숙은 어려워 (For. 대학문예지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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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Dear’라는 단어를 보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대학문예지 [스펙트럼] 창간호의 테마인 동시에 ‘편지의 서문'에 종종 등장하는 단어, Dear. 이를 보고 저는, 이상하게도 ‘자숙'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연예인들… 이를테면 음주운전이나 마약 복용을 한 연예인들이 복귀를 하기 전에 자숙 기간을 가지잖아요. 그런데 이 때의 자숙은 사실 ‘Self-reflection(반성)’보다 ‘Dear(여러분 봐주세요)’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중잣대가 발생하죠.
A가 8개월의 자숙 기간 후에 복귀했을 때는 ‘에라이 저 시벌놈'이라고 생각하고, B가 4개월의 자숙 기간 후에 복귀했을 때는 ‘드디어 왔군요!’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객관적인 척 글을 쓰지만, 저도 마찬가지로 일관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종종 제 안의 모순을 발견하죠.
‘일본 불매 운동'이 한창일 때도, 사람들과 한 마음 한 뜻을 모아 유니클로를 죽여 버렸지만, ‘동물의 숲'을 보고는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왜 그랬던 걸까요? 뻔뻔한 걸까요? 귀여움에 잡아 먹힌 걸까요?
저는 이 모든 현상의 원인이 ‘객관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테면 ‘객관적'으로 여겨지는 가치들. 상식이나 법. 그것들도 사실은 주관의 집합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니까요. 여담이지만 제가 법학과 수업을 청강한 적 있는데요, 첫 시간에 교수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법은 해석의 학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이기에, 개개인의 해석이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니까요. 우리는 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복잡하게 나쁜 존재인 거죠. 그리고 그 간극을 줄이는 방법 중에 하나가 예술이고요. 하지만 종종 ‘예술’이라는 핑계로 자신을 정당화(“이건 객관적인 행동이다!”)하는 부류가 등장합니다. 우리 모두, ‘예술가’이기 전에 사람인 건데, ‘예술가’라는 이유로… (이하 생략)
아무튼 이에 대한 저만의 해석이, 곧 나올 대학문예지 [스펙트럼] 창간호에 소설로서 수록됩니다. 70매 단편소설이며, 제목은 [자숙은 어려웡]이고, 간략한 줄거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정말 간략한 줄거리
1.
나는 신인 배우인데 술 먹고 운전하다가 유명한 감독님이랑 추돌 사고 일으킴
2.
근데 유명한 감독님도 술 먹고 운전 중이었음
3.
둘 다 음주운전으로 구속
4.
네티즌들이 감독님은 동정하면서 나한테는 악플 겁나 많이 씀
5.
나는 내 잘못이 ‘음주운전’이 아니라 ‘무명’이라는 생각이 듬
6.
그런데 감독님이 영화를 찍자고 제의 함. 음주운전 예술가들이 뭉쳐서 예술로 자숙하자고.
끝으로 제가 6월 안전가옥(🙄피드백을 피드백하다 )에서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을 토대로 스토리텔링하는 작업에 도전해보겠다고 했는데요,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자숙은 어려웡]을 쓰면서는 프랭크퍼트의 소논문 [개소리에 대하여]를 참조했습니다.
작가는 책에서 개소리와 거짓말의 차이에 대해 언급합니다. 거짓말은 진리값을 염두에 두지만, 개소리는 애초에 진리에 관심이 없다. 그렇기에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훨씬 더 유해한 존재인데, 우리 사회는 거짓말과 달리 개소리에는 관대하다. 개소리를 하나의 고유한 정체성으로 간주해 준다.
여기까지가 책에서 말한 바이고, 저는 그 원인이 ‘무엇이 진리이고 개소리인지 판단해 줄 객관의 부재’라고 해석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스펙트럼] 창간호를 읽어보시길…
p.s.
저는 힙합을 좋아하지만, 누군가 어떤 힙합 가사를 문제 삼을 때, “야, 미국에서는 이거보다 더한 가사도 써~”라고 변호하는 사람들은 정말 싫어합니다. 이게 바로 ‘진리를 뒤흔드는 개소리’인 셈이죠. 차라리 “나는 그냥 그 가사가 좋아”라고 말할 것이지(근데 대게 이렇게 안 말하는 이유는, 자신도 그 가사가 도덕적으로 별로란 걸 알기 때문이겠죠).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류연웅
"아직도 ‘동물의 숲’ 못 샀지만… 지금 제일 갖고 싶은 게임은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