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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 : 아이유라는 이름의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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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
4명의 감독이 4편의 단편 영화를 만들었고, 이를 <페르소나>라는 제목으로 묶었습니다. 일종의 옴니버스 영화인 셈입니다. 옴니버스 영화의 특성상,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하나의 주제나 소재를 공유하게 될 겁니다. <페르소나>가 공유하는 대상은 배우 이지은(가수 아이유)입니다.
이경미, 임필성, 전고운, 김종관 감독이 참여했습니다. 시나리오에 맞추어 캐스팅을 진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배우 이지은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나리오를 작업했다고 합니다. 한 명의 배우가 4명의 감독에게 영감을 주고, 4명의 감독이 한 명의 배우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창작하는 작업인 셈입니다. 그리고 그 한 명의 배우는 데뷔 10년차의 가수이자 연기자인 아이유, 이지은 입니다.
<페르소나>의 예고편은 앞서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의 예고편 조회수의 3배를 뛰어넘었다고 합니다. 독특한 기획, 국내 제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엇보다 아이유라는 걸출한 스타의 존재감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증폭시킨 것이겠죠. 저 역시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2019년 4월 11일 오후 5시에 공개된 <페르소나>를 누구보다 빠르게 감상하고 돌아왔습니다.

페르소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감독 : 이경미, 임필성, 전고운, 김종관
주연 : 이지은
기획 : 윤종신
제작 : 미스틱스토리, 기린제작사
제공 : 넷플릭스

첫 번째 이야기: 이경미 감독,​ <러브 세트>

늦여름, 테니스 코트장. 18살 IU(이지은)와 영어 선생님 두나(배두나)의 테니스 매치 현장이다. 외동딸에 응석받이인 지은은 아빠의 애인이 된 영어 선생님이 죽도록 싫다. “이기면 너네 아빠랑 헤어져준다"는 영어 선생님의 제안에 지은의 승부욕이 발동한다. 아빠를 뺏기지 않으려는 질투와 동시에 매력 넘치는 성인 여성에 대한 부러움이 실린 강스매싱. 10대 소녀의 복잡한 마음이 담긴 경기는 점차 치열해진다.​
파란 하늘 아래 푸른 테니스 코트, 그 곳에서 하얗고 예쁜 아이유와 배두나가 피와 땀을 흘려가며 테니스로 내기(?)를 합니다. 소년이 성인 남성에게 도전하는 스포츠물은 익숙한데, 소녀가 성인 여성에게 이를 악물고 도전하는 모습은 꽤나 새롭게 느껴지네요. <러브 세트>에서의 아이유는 표독스러운 표정을 짓고, 소리를 지르며 욕(f….)을 합니다. 그저 그런 아이돌에서 인정받는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하기까지, 어쩌면 이런 순간들을 반복해서 견디지 않았을까 하는 애잔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 임필성 감독, <썩지 않게 아주 오래>

갑자기 연락이 두절됐다 나타난 은(이지은). 정우(박해수)는 그런 은이 의심스럽다. 정우의 추궁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은은 둘의 관계에 문제제기를 한다. “오빠한테 여자란 뭐야?” 사실 은은 사람이 아닌 마녀다. 자신을 소유하려는 정우의 욕심에, 은은 더 큰 것을 요구하게 된다. 은이 지배하는 ‘하얀방'의 정체 속, 연인의 관계 규정이라는 문제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아이유의 노래 <잼잼>에서 모티브를 얻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하네요. 영화 제목도 <잼잼>의 가사에서 따왔다고 하구요.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는데, 다소 아쉬운 지점들이 있습니다. ‘연인이라는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질문과 ‘팜므 파탈 서사'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세 번째 이야기 : 전고운 감독, <키스가 죄>

아빠한테 키스 마크를 들킨 혜복(심달기). 머리칼까지 숭덩 잘린 채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갇혀버린 폭력의 현장. 단짝 친구 한나(이지은)는 혜복의 상황을 참지 못하고 직접 팔을 걷어붙인다. 아빠의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갇혀 있던 혜복은, “안 되겠다, 복수하자"는 한나의 말에 이끌려 적극적이 되어간다. 그렇게 “뭔가 용감해지는 맛"에 점점 빠져드는 두 친구. 가부장제 속 폭력적 상황을 상대로 통쾌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4편의 영화들 중 가장 좋았습니다. 다른 작품들이 다소 이미지와 의미 중심인데 반해 <키스가 죄>는 이야기적인 재미도 충분합니다. 전고운 감독 특유의 유머도 좋고, 무심한듯 내뱉는 아이유의 대사들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혜복'을 연기한 심달기 배우의 연기가 정말 좋았습니다. 4편의 영화들 중 아이유의 연기가 가장 편안하다고 느꼈는데요, 아마도 심달기 배우와의 호흡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네 번째 이야기 : 김종관 감독, <밤을 걷다>

소곤소곤 이야기가 들리는 고궁 산책로, 밤거리를 걷는 연인 지은(이지은)과 K(정준원). 평범한 연인의 산책 같아 보이지만 이들의 대화는 어딘가 수상쩍다.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으면서…” 라는 지은의 핀잔에 “제멋대로 죽어버려놓고…”라고 응수하는 K. K의 꿈속에 나타난 죽은 연인 지은과의 대화. 꿈에서 깨면 사라질 시공간에서 연인이 안타까운 둘만의 밤을 걷는다.
K의 꿈 속을 배경으로, 죽은 연인과의 걷는 밤거리가 차분하게 펼쳐집니다. 나레이션과 대사의 교차, 흑백 화면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빛과 어둠 등 영화적 표현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입니다. 쓸쓸함과 낭만을 표현하는 방식은 인상적이었지만, 지은의 대사가 너무 과하게 시적인(?) 나머지 낭독극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4편의 영화들 중 유일하게 아이유보다 영화적 표현이 앞서 있다는 인상을 받았네요.

기미신궁's 추천 포인트

단편 영화에 익숙치 않은 분들이라면

‘우와 아이유 나온다' 하고 틀었다가 실망하실 수 있겠습니다. 아무리 아이유가 나온다 해도 기본적으로 단편 영화에요. 상업 장편 영화와는 거리가 멀죠. 심지어 서사 중심의 영화도 아니라서 무척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대체 무슨 내용인가 싶을 수도 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신다면, 이번 기회에 한번 도전해 보세요. 주변을 조용하게 하시고, 영화 감상에 방해받을 가능성을 최소화 하신 후 시작하세요. 답답하다고 화내지 마세요. 천천히 음미하듯 감상하세요. 다소 낯선 맛이겠지만, 마음을 열고 접근하신다면 이번 기회에 단편영화의 매력을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

아이유의 팬이라면

무조건 보셔야죠. 아이유가 주인공인 영화 4편을 볼 수 있잖아요. 넷플릭스라서 참 다행이에요. n회차 감상을 추가 비용 없이 즐길 수 있죠. 단편영화지만 저예산 독립영화는 아니라서 화질과 색감도 참 좋아요. 모바일이나 스마트TV로 보신다면 반드시 넷플릭스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하시고, 맥OS에서 보신다면 크롬 브라우저 말고 사파리 브라우저로 보세요.

국내 단편 영화 매니아라면

아마 실망하실거에요. 4명의 감독 중 좋아하는 감독이 있다면 그 분 작품만 골라서 보세요. 매니아들에게 소구하기에 <페르소나>는 조금 애매한 지점이 있어요. 아이유는 분명 매력이 넘치는 배우지만, 아직 상업 장편에 데뷔하지 않은 원석과도 같은 매력은 (어쩌면 당연히) 부족해요. 데뷔 10년 차이고, 잘 관리받은 대스타잖아요. 4명의 감독 역시 마찬가지에요. 사실 단편 영화 하실 짬은 아닌 분들이죠. 매니아 분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젊고 패기 넘치는 감독과 배우의 에너지를 즐기는 경우가 많으실 텐데, 그런 분들을 만족시키기에 <페르소나>는 너무 메이저네요.

기미신궁's 생각

아이유라는 이름의 장르

밝혀두자면, 저는 가수 아이유의 팬입니다. 저는 그를 고집있는 가수라고 생각해요. 기획사 시스템에서 성장한 이들이 쉽게 갖기 어려운 고집을 아이유는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대중들의 선호보다는 스스로의 취향을 더욱 중시하는 아티스트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부터, <스물 셋> <팔레트> <삐삐>를 들어보면 그 고집이 느껴져요.. 스캔들이나 루머에 대처하는 방식도, 소속사가 인수합병 될 때 보였던 행동들에서도 마찬가지죠. 저는 아이유의 그런 고집을 응원하는 사람 중 하나에요.
2019년 현재, 아이유라는 브랜드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에요. 영화 연기 첫 도전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많은 TV 드라마에서 연기를 보여줬고, 상업적으로 성공했잖아요. 막말로 숨만 쉬고 미소만 지어도 지금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 그가, 왜 이런 낯선 기획에 도전했을까? 이상하잖아요. 솔직히 대중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콘텐츠라는 건 기획 단계에서부터 알았을 텐데.
10년간 활동하고 이런저런 평가를 받으면서 느낀 건, 내 논리가 분명하면 어떤 평가를 받아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걸 했다가 평가가 갈리면 힘들고 지치더라. 음악이든 연기든, 예능 프로든 내 이미지가 어떻게 분류될지 크게 따지지 않고 활동해왔다. 그 순간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과 맞는다면 그때그때마다 가리지 않고 해왔다. 씨네21 1199호, ‘아이유 혹은 이지은을 발견하는 네 갈래의 길' 중에서 발췌
아마도 이 인터뷰 내용이 질문에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자신의 분명한 논리에 따라 작품을 선택하고, 미심쩍은 것은 피하고, 이미지와 상관없이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 <페르소나> 역시 이런 이유로 선택했다면, 그의 고집과 도전을 충분히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쨌든 아이유는 <페르소나>를 통해 최초의 자리에 다시 한 번 올라섰잖아요. 국내 영화 사상 처음으로 하나의 ‘장르'가 된 셈이죠. 송강호도 김혜수도 (아직은) 오르지 못한 자리에, 배우 이지은이 올라섰어요. 그의 나이 26세, 어떻게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글. Shin(김신) "<페르소나>는 제작이 완료된 이후 넷플릭스 공개가 결정되었다고 하는데요, (조금 나쁜 말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선택의 신의 한 수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극장에서 개봉했다면 아주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을 거에요. 넷플릭스는 구체적인 지표를 공개하지 않으니 다행. 모두가 상처받지 않는 행복한 엔딩이네요."
편집자. "화제작이라고 다 맛있는 건 아니죠. 먹을까 말까 고민될 땐 역시 기미신궁이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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