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드디어 공개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작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 회당 제작비 15~20억,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규모로 추정되는 마케팅 비용. 일각에서는 ‘한국 콘텐츠 업계의 운명이 <킹덤>에 달려 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목받은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기대하고 있던 작품인 만큼, 공개되자마자 시즌 1 전체를 빠르게 감상했습니다. 기대보다 걱정을 많이 했어요. ‘15~16세기 조선에 좀비가 나타난다’는 설정은 아주 흥미롭지만, 이야기는 설정만으로 완성되지 않잖아요. 심지어 사극과 좀비물은 너무 다른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고요. 볼거리는 풍부하지만 서사는 빈약한, 그저 그런 작품 정도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오히려 아주 훌륭한 작품이었어요. 두고두고 떠들고 싶을 만큼. 시즌 2 나올 때까지 좀비로 살고 싶을 만큼.
그래서 오늘 신스텔러 특별편을 통해 <킹덤>이 가진 매력에 대해 다루려고 해요. 도대체 넷플릭스는 왜 <킹덤>을 선택했을까요? 왜 미국 외 국가 중 가장 많은 제작비를 투입했을까요? 도대체 뭘 믿고 제작비보다 더 많은(것으로 추정되는) 마케팅 비용을 썼을까요?
1. 한국 시장과 글로벌 시장을 동시에 타겟하는 소재
조선의 요가인
<킹덤>을 가장 간단히 설명하자면, 사극과 좀비물의 조합이에요. 이 조합 자체가 특별하고 새롭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조합은 한국 관객과 글로벌 관객 모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카드라고 할 수 있어요.
일단 한국 관객에게 사극은 아주 익숙해요. 조선 시대, 사극체(?) 말투, 의상, 세트 등 거부감을 느낄 만한 것이 없죠. 반면 좀비는 낯설어요.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든 좀비 영화가 <부산행>인데 2016년에 개봉했잖아요. 아직 채 3년이 안됐을 정도로 낯선 소재죠.
결국 한국 관객에게 <킹덤>은 익숙한 사극과 낯선 좀비물의 조합이고, 낯선 좀비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익숙한 조선시대 사극이 떠받치고 있는 꼴이에요.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함으로써 최소한의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반대로 글로벌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게요. 그들에게 있어 조선시대 사극은 아주 낯설 거예요.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또 그만큼 신비롭고 흥미롭겠죠. 좀비는 아마 한국 관객들보다 익숙할 거예요. 특히나 영미권 관객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비교적 흔한 ‘좀비 아포칼립스’는 글로벌 관객들의 흥미를 끌기 어려울 수 있지만,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좀비가 등장한다면 아주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한국 타겟 [익숙한 사극 + 낯선 좀비]
글로벌 타겟 [낯선 사극 + 익숙한 좀비]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킹덤>은 아주 영리한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한국 관객과 글로벌 관객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을 가능성을 만들었으니까요. <킹덤>을 통해 한국 시장에서는 신규 구독자를 늘리고, 글로벌 시장에서는 매력적인 콘텐츠 풀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지 않았을까요?
2. 쉬운 만큼 안전한 서사 구조 : 모험 성장 서사
성장ing
그래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즌데, 저는 꽤나 참신하고 독창적인 서사 구조를 사용할 줄 알았어요. 드라마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의 작품이라서 더욱 그랬죠. 하지만 <킹덤> 2화를 보면서 제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 작품은 아주 쉽고 간결한 서사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킹덤>은 모험 성장 서사를 충실히 따르고 있어요. 일상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어떠한 계기로 인해 더 큰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요. 그 과정 중에 동료를 만나기도 하고, 방해를 만나기도 하죠.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성장한 주인공은, 최초에 모험을 떠나게 된 욕망과는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자신의 성장을 증명하곤 해요. 이거 완전 아이들이 좋아하는 서사예요.
게다가 시작부터 선악 구도를 명확하게 설정합니다. 이거 요즘 기준으로 볼 때 조금 촌스럽거든요. 주지훈은 착하고 류승룡은 나빠요. 그냥 이걸로 끝이에요. 영화 <베테랑>의 선악 구도만큼이나 명확해요. 요즘 슈퍼 히어로 무비에서도 이렇게 칼 같은 선악 구도는 잘 안 만드는데.
자극적인 장면들 때문에 19금 등급까지 받은 <킹덤>은 왜 이런 서사를 선택했을까요? (애들 보여줄 것도 아닌데…)
제 생각엔 아마도 ‘소재의 낯섦' 때문일 거예요. 제가 연극 연출을 공부할 때 배운 건데요, ‘익숙한 이야기는 낯선 표현 방식으로, 낯선 이야기는 익숙한 표현 방식으로 연출하는 것이 좋다’라는 내용이었어요. ‘15~16세기 조선에 좀비가 나타난다'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새롭고 낯설잖아요? 이 소재가 충분히 매력적으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안전한 서사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작전은 꽤나 성공적이었어요. 누가 범인인지 등장인물 클로즈업 때마다 상세히 살필 필요가 없거든요. 나쁜 놈과 착한 놈은 정해져 있어요. 그냥 나쁜 놈이 '어떤' 나쁜 짓을 하는지, 착한 놈이 '어떤' 착한 짓을 하는지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3. 극한으로 몰아치는 장르적 쾌감
회식이다!
* 경고! 미약하나마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킹덤>의 시즌 1은 총 6화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5화를 제외하고는 모두 장르적 쾌감을 극한으로 몰아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1화는 비교적 깜놀 연출이 많은 편이구요, 깜놀이 아니더라도 꽤나 고어한 장면들이 다수 배치되어 있습니다. 호러를 전면에 내세워 관객들을 화면 앞에 붙들어 놓는 것이죠. 2화부터는 마치 예열을 마친 스포츠카처럼 좀비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합니다. 2화-3화에 걸쳐 좀비들과의 1차 대결이 펼쳐지고, 3화-4화에 걸쳐 2차 대결이 펼쳐지죠. 이 과정에서 ‘좀비' 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클리셰들이 폭발하듯 등장합니다. 스포일러가 될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좀비물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모두 알만한 것들이라고만 해 둘게요. 그리고 4화부터는 좀비보다 무서운 인간의 욕망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구요, 5화에서는 본격 정치 스릴러의 형태를 띠기 시작하다가, 6화에 이르러 시즌 2를 준비하며 끝납니다.
막간을 이용한 <킹덤> 회차별 감상 팁!
1화 아무래도 좀비가 많이 등장하지 않다 보니 지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을 호러적 연출로 해결하려고 한 듯 보이는데요. 아직 1화일 뿐이니 조금 참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2화 본격적으로 좀비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동래(=부산)'에서의 1차 대난투(?)가 아주 압권입니다. 한복 입은 좀비들의 대향연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킹덤> 좀비의 특성을 체크하는 것도 잊지 마세요.
3화 1차 대난투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2차 대난투를 준비합니다. 3화 막판에 이르러 2차 대난투가 진행되구요. 인물들은 좀비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살아남기 위한 고민을 시작하는데요, 주인공 세력의 행보와 양반 세력의 행보가 아주 대조적으로 펼쳐집니다.
4화 좀비들의 스펙타클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궁궐 스릴러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인물들의 대화에 집중하세요. 힌트들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5화 그만 보고 싶은 유혹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좀비들은 간데없고 쓸모없어 보이는 코미디 장면과 악당들의 음모가 주로 등장하기 때문이죠. 6화를 준비한다고 생각하고 조금만 참도록 해요.
6화 대단원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만한 새로운 사실들이 등장하고, 관객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킵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의 ‘헬름 협곡 전투',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의 ‘그레이트 월 전투'를 기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 남은 시간을 체크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할말하않)
양념처럼 등장하는 코미디 몇 장면을 제외하면, <킹덤>은 자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합니다. 아주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한 작품은 아니에요. 하지만 우직함과 든든함이 느껴져요. 호러와 좀비물의 관습에 충실하고, 때로는 스릴러의 관습을 따르죠. 가슴을 울리는 로맨스는 가능성조차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웰메이드 한국 드라마들이 ‘종합선물세트'를 추구했다면 <킹덤>은 이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호러/좀비/스릴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동시에 선악구도를 명확히 하고, 각 인물들에게 욕망과 행동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을 각기 다른 세력의 일원으로 활동시키죠.
<킹덤> 등장 세력 - 선, 악, 민폐, 중립
선 — 이창(세자) 세력
악 — 조학주 세력
민폐 — 양반들
중립 — 좀비들
또한 좀비물을 표방하는 만큼, 조선에 나타난 좀비 설정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영화 <부산행>이 '좀비의 기원'에 대해서 뻔뻔하리만치 모른 척하는 것과 달리, <킹덤>에서는 좀비의 기원을 아주 중요하게 다룹니다. 또한 좀비들의 능력 역시 구체적으로 설정되어 이야기의 핵심과 연결 짓습니다. 좀비의 기원과 능력에 대해서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스포일러 없이 다룰 자신이 도저히 없어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나중에 보고 와서 다시 얘기해요)
세 줄 정리
1) <킹덤>은 한국 시장과 글로벌 시장을 동시에 타깃으로 삼을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2) 그리고 이 소재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 가장 안전한 서사를 선택했구요.
3) 그동안 한국 웰메이드 드라마가 해왔던 '종합선물세트'식 구성을 버리고, 오직 장르적 쾌감을 극한으로 몰아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다음 시즌을 기다리게 하는 방식은 조금 너무했다 싶었어요. 이제는 미국 드라마에서도 잘 쓰지 않는 작전인데 말이죠. 배우들의 연기도 전체적으로 아쉽게 느껴집니다. 후시 녹음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처럼 보이는데, 싱크가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자주 보이구요. 여성 캐릭터가 남성 캐릭터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고, 그나마 있는 두 여성 캐릭터도 입체적으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지금 있는 여성 캐릭터라도 조금 더 깊이 있게 활용하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덤>은 지금까지의 한국 드라마 기준에서 멀리 앞서나간 작품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킹덤>의 방식이 반드시 한국 드라마의 정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작품들이 많아지고 대중적 성공을 거둘수록 다양한 콘텐츠들이 용기를 얻고 시장에 나올 수 있겠죠.
<킹덤>은 넷플릭스의 선택을 받았고, 이제 대중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연 국내 관객과 글로벌 관객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요? 받는다면 어느 정도일까요? 어느 쪽에서 더 좋아할까요? 여러모로 시선이 모일 수밖에 없는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입니다.
* 신스텔러 본 회차에 사용된 이미지는 Netflix 공식 사이트 트레일러 영상의 캡처본입니다.
글. Shin(김신) "그래서, 시즌 2는 언제 나온다구요...?"
편집. May(김미루) "밤새 몰아보고 24시간 내에 리뷰 쓰기! 스토리 PD 신이 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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