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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호러의 다양한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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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하우스호러
영화
게임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집(House)에서, 가장 위험한 사건(Horror)이 벌어진다.

영미권의 정통 하우스 호러를 소개할 때 위의 문장을 언급한 적이 있었죠. 위의 문장이 정통 하우스 호러를 소개하는 문장이라면, 하우스 호러를 변주한 이야기들은 위의 문장에서 몇 가지 요소를 바꾸곤 합니다. 예를 들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인데 집은 아니거나, 집은 집인데 가장 안전한 공간이 아닌 위험한 공간으로 모험(?)을 떠나거나 하는 방식이죠. 혹은 가장 안전하지도 않고 집도 아닌 공간에서 어쩔 수 없이 머물러야 하는 인물들에게 위험한 사건이 벌어지고, 살기 위해서는 그 공간을 탈출해야 한다거나. 결국엔 ‘집'이라는 키워드를 특정한 ‘공간'으로 확장시켰다고 볼 수 있죠. 공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공포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정통 하우스 호러의 특징과 유사해요.​
이번 공모전에서는, 오늘 다루는 영화들과 비슷한 케이스도 ‘하우스 호러'의 범주에 넣고 심사하려고 해요. 2019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공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다만, 어떤 공간을 배경으로 하더라도 하우스 호러의 특징은 잘 살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와 관련된 내용은 [하우스 호러 특집 #05]에서 더 상세하게 설명할게요.) 오늘 소개하는 영화들을 확인해보시고, 새로운 하우스 호러 장르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변주 1 : 방(=집) 탈출 서사]

아 깜짝이야 살려주세요
주인공이 지금 있는 공간이 어디라도 상관없습니다. 내 집이든 남의 집이든, 아니면 무언가를 피하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곳이든 상관없어요.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이 공간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공간은 주인공에게 불편한 공간, 위험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혹은 주인공이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공간을 탈출해야 한다는 설정이 필요하겠죠. 동시에 너무 쉽게 탈출하면 안 됩니다. 이 공간은 주인공이 탈출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방해해야 합니다. 위험한 존재들이 문을 지키고 있을 수도 있고요, 끔찍한 함정들이 설치되어 있을 수도 있죠. 결국 이 공간은 주인공에게 1) 공간을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을 부여해야 하고, 동시에 2) 공간을 탈출하기가 무척 어려워야 합니다.

영화 <쏘우 (2014)>

제임스 완 감독의 영화 <쏘우>는 오늘 소개하는 [변주 1]의 정석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주인공과 한 남자가 낯선 지하실에 묶여 있습니다. 주인공의 옷 주머니에는 탈출의 규칙이 녹음된 녹음기가 있습니다. 규칙은 이렇습니다. 8시간 안에 저 남자를 죽이지 않으면, 두 사람도 죽고 주인공의 가족도 죽는다.
주인공은 낯선 공간에 납치되어 묶여 있습니다. 당연히 나가고 싶겠죠. 게임의 규칙을 알게 되면 그 욕망은 더욱 절박해집니다. 1) 공간을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부여되었죠. 게다가 지금 주인공이 갇힌 공간은 낯선 지하실이고, 쇠사슬로 묶여있기까지 합니다. 자연스럽게 2) 공간을 탈출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영화 <이스케이프 룸 (2019)>, 영화 <큐브 (1997)>

국내 개봉은 3월이지만, 미국에서는 개봉 후 꽤나 좋은 흥행 성적을 올리고 있는(제작비 900만 달러, 4주 차 흥행 수익 4800만 달러…) 애덤 로비텔 감독의 영화 <이스케이프 룸>입니다. 말 그대로 방탈출 카페(?)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6명의 젊은이들이 상금 백만 달러가 걸려있다는 비밀스러운 방 탈출 카페(?)에 초대받습니다. (어쩌면 당연히) 이 방 탈출은 그냥 방 탈출이 아니었고, 게임의 규칙을 따르지 않거나 시간 안에 탈출하지 못하면 죽는 무서운 방 탈출 게임이죠.
주인공들은 죽기 싫으면 1) 공간을 탈출해야 합니다. 그리고 2) 공간을 탈출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백만 달러와 목숨이 달린 방 탈출 게임의 문제라면, 아주 어렵겠죠. 6명이나 들어갔으니 동료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을 저울질해야 하는 상황도 생길 겁니다. (아직 개봉 전이라 못 봤지만…)
<이스케이프 룸>의 예고편을 보다 보니 떠오른 약 20년 전 영화가 있었는데요, 바로 빈첸초 나탈리 감독의 영화 <큐브(1997)>입니다. 당시로써는 아주 독특했던 캐나다 호러/스릴러 영화였는데요, 기본적인 설정이 <이스케이프 룸>과 유사합니다.
7명의 남녀가 이유도 모른 채 ‘큐브'라는 공간에 갇히고, 퀴즈(라기엔 너무 어려운)를 풀어 큐브를 탈출해야 하는 것이죠. 이 공간은 수많은 방들이 연결된 ‘큐브'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요, 어떤 방은 안전한 방이고 어떤 방은 함정이 설치된 방입니다. 함정 방에 들어가면 거의 죽는다고 봐야죠. 여기에 오기 전의 기억도 잃고, 이유도 모른 채 큐브로 납치된 주인공들은 당연히 1) 이 공간에서 나가고 싶을 테고, 나가기 위해서는 문제를 풀어 출구를 찾아야 하니 2) 탈출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게임 <사일런트 힐 P.T>

하우스 호러의 특징과 탈출 서사의 결합은 공포 게임에서 그 빛을 제대로 발휘하곤 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사일런트 힐 P.T>가 있습니다. 여기서 ‘P.T’란 ‘Playerble Teaser’란 뜻으로, 게임 본편이 아닌 예고편이란 뜻이에요. 다른 예고편과 다른 점은 직접 플레이할 수 있는 일종의 체험판이라는 것이죠. 문제는, 새로운 <사일런트 힐> 시리즈의 등장을 예고했던 P.T가 어마어마하게 무섭고 어려운 집 탈출(?) 게임이라는 점입니다. 티저니까 당연히 무료로 배포했고, 전 세계의 <사일런트 힐> 매니아들과 호러 게임 매니아들이 이 티저에 열광했습니다. 이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변주 1]의 핵심인 1) 여기서 나가고 싶다, 2) 나가는 거 너무 어렵다를 직접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본편 제작이 무산되어, <사일런트 힐 P.T>는 본편 없는 예고편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무료로만 배포했기에, 이제는 새롭게 구할 수도 없는 전설의 게임이 되어버렸죠. 유튜브에서 게임 실황 영상을 확인하실 수 있으니 꼭 한 번쯤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P.T를 플레이하지 못한 것이 인생의 한이 될 것 같다 (저 같은 사람) 하시는 분들은, <레지던트 이블 7>의 초반부를 플레이하시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변주 2 : 집은 아닌데 집과 다름없는 공간들]

옛날에는, 특히 영미권에서는 해지기 전에 집에 들어가서 다음날 아침까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하루 중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자 휴식을 취하는 공간인 집을 공포의 배경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겠죠. 하지만 동시대의 우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거나, (과거의 저처럼) 일주일에 한 번 퇴근하는 사람들도 있죠. 해가 지면 일터에 나가 동이 틀 때까지 일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도 있구요.
이러한 사람들의 경우, 집에서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 것보다는 자신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곳에서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 것이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질 겁니다. 이 지점을 파고든다면 하우스 호러의 특징을 잘 살려냈다고 볼 수 있겠죠.

영화 <기담 (2007)>, 영화 <오피스 (2015)>

정가 형제(정식, 정범식) 감독의 영화 <기담>과 홍원찬 감독의 영화 <오피스>입니다. <기담>의 주된 배경은 1940년대 경성의 병원이고, <오피스>의 배경은 제목 그대로 회사의 사무실입니다. 주인공들은 두 공간에서 집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하우스 호러의 특징에 따라 그 공간들에서 무서운 사건들이 벌어지고, 주인공들은 무서운 이러한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그 공간을 떠나지 못합니다. 일터이자 회사잖아요. 먹고 살아야죠.
<기담>에는 열흘 동안 시신 보관소에서 당직을 서야 하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야근도 아니고 당직이라니, 하우스 호러가 펼쳐질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죠. <오피스>의 주인공은 영업팀의 인턴 직원입니다. 성실하고 착하지만, 회사에서 인정받을 만한 스펙은 없죠. 정규직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회사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자기 능력을 증명해야 합니다. <기담>과 <오피스>의 주인공들은 집보다는 병원과 회사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이 공간들에서 무서운 사건이 벌어졌을 때 느끼는 공포는 정통 하우스 호러의 공포와 비슷하거나 더 치명적일 수 있겠죠.
나아가 영화 <여고괴담>을 위시한 학교나 학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공포물도 많습니다. 학생들, 특히나 대학 입시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학생들은 집에서는 겨우 잠만 자고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죠. 이러한 상황을 활용한 공포 역시 정통 하우스 호러의 특징들을 잘 활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변주 2]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은 (물리적으로) 집을 배경으로 하지는 않지만, 주인공들에게 있어 그 공간들이 집과 비슷한 의미를 가집니다.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내고,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인데, 그 공간이 집이 아닐 뿐이죠. 이 공간에 한 가지 설정을 더하면 아주 훌륭한 호러의 무대가 되는데요, 바로 업무와 관련된 압박이나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오피스>의 주인공은 정규직 전환을 목표로 하는 인턴이기 때문에 업무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가 상당할 것입니다. 게다가 새로 들어온 인턴은 자신보다 더 스펙도 뛰어나고 예쁘고 똑똑하(다고 생각하)죠.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들은 좁은 공간, 좁은 책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주변 친구들은 친구라기보다는 경쟁자죠. 대학 입시는 경쟁이고, 이 경쟁에서 탈락하면 인생이 무너질 것이라는 압박이 상당합니다. 이런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아 약해진 사람들에게 무서운 사건이 벌어지면, 말 그대로 지독한 호러가 되는 것이죠.

[변주 3 : 가지 말라는 공간에 가면 큰일(?) 난다]

세 번째 변주는 위험한 공간에 일부러 갔다가 무서운 사건을 맞이하게 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입니다. 하우스 호러의 범주에 넣기는 어렵지만,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공포를 만들어내는 이야기임에는 분명하죠. 대부분 ‘공포 체험'의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혈기 왕성하고 호기심 넘치는 젊은이들이 ‘귀신 들린 집' 같은 공간에 찾아갔다가 지독한 공포를 맞이하는 식이죠.

영화 <곤지암 (2018)>

정범식 감독의 영화 <곤지암>은 개인 스트리밍 방송이 대중화된 동시대의 문화를 ‘공포 체험'과 잘 버무린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곤지암 정신병원'이라는 오래된 괴담을 소재로 하여, 7명의 젊은이들이 그곳으로 공포 체험을 떠납니다. 공포 체험의 과정을 라이브 스트리밍 하면 큰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죠. 밤이 되자 그들은 부적과 성수, 온갖 촬영 장비들을 갖춘 채 곤지암 정신병원에 잠입하고, 끔찍한 귀신들을 만나게 됩니다.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에서, 그 공간에 얽힌 귀신들이 등장하여 인물들을 괴롭힙니다. 하우스 호러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죠. 이것을 제외하면 딱히 하우스 호러의 특징이라 할 만한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제목부터 공간을 내세우고 그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공포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참고할 만합니다.
이와 비슷한 영화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한 편을 더 소개하자면 영화 <블레어 위치 (1997)>를 꼽고 싶습니다. 영화학도 3명이 블레어 위치의 전설(=괴담)을 파헤치고자 촬영 장비를 들고 숲으로 들어갔다가 난리가 나는(?) 이야기에요. 하우스 호러의 범주에 넣기는 분명히 어려운 작품이에요. 숲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파운드 푸티지 방식의 유행을 이끌었다는 점, 실제 존재하는 괴담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점, 다큐멘터리 팀이 카메라를 들고 위험한 공간으로 직접 들어간다는 점에서 충분히 참고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소개한 하우스 호러를 변주한 영화들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방(=집) 탈출 서사 2) 집은 아닌데 집과 다름없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서사 3) 가지 말라는 공간에 갔다가 큰일 나는 서사
이번 안전가옥 원천 스토리 공모전에 응모하실 경우, 1번과 2번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크게 무리 없이 하우스 호러 장르로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3번의 경우는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무서운 일이야 당연히 벌어질 테니, 공간에 집중하세요. 주인공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인지,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공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체크해보세요. 심사 과정에서 ‘이것을 하우스 호러로 볼 수 있느냐'의 기준은 그리 까다롭지 않을 예정이지만, 누가 봐도 하우스 호러가 아닌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한다면 안전가옥이 혼날 테니까요.
글. Shin(김신) "[변주 1]과 [변주 2]는 내가 어쩔 수 없겠지만, 가지 말라는 데는 가지 마세요. 귀신보다 무서운 것은 무례한 사람이 되는 일 아닐까요."
편집. Clare(최다솜) "먹을까 말까 할 땐 먹어라 / 가지 말라고 할 땐 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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