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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에서 <월간순정 노자키 군>까지

콘텐츠
카메라를멈추면안돼!
월간순정노자키군
백종원의골목식당

"내가 진짜 끝내주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말이야! 네가 한 번 만들어 봐!" 아...죄송합니다. 아마 창작자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지 않을까 싶은 도입을 써버렸네요. 저는 저번 설날에도 과학을 중심으로 하는 SF는 잘난 척 하는 것 같아 재수없으니 한의학을 바탕으로 하는 SF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SF작가니까 이정도 투정은 봐주시길 부탁드려요. 그러니, 네. 왜 저 한문장으로 시작했는지 감이 오시겠죠들.

물론 "네 작품은 진짜 재미없어."라거나 "dcdc라는 걔 완전 개빻지 않았냐?" 뭐 이런 류의 지적들도 작가들을 고통스럽게 하기는 마찬가지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들이 비록 저를 아프게 할지라도 제 작품들과 저 스스로를 돌아볼 계기가 되기도 해요. 잘 듣고 잘 판단해서 그렇게 비판한 분들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타협하거나를 선택할 수 있지요.
하지만 저에 대한 호의와 기대를 담아 진심으로 제가 잘 되기를 빌면서 도무지 견적이 나오지도 않고 제 작업스타일과 맞지도 않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강권하시는 분들께 유하게 거절하는 방법을 고민하기란 언제나 쉽지 않은 과제죠. 더욱이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이런 제안을 듣게 될 경우에는 웃으면서 흘려넘길 수라도 있는데, 만약 저와 계약을 맺은 클라이언트, 그러니까 소위 갑으로부터 듣는다면...더 이상 농담이 아니게 되겠지요.
그리고 이 "내가 진짜 끝내주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말이야! 네가 한 번 만들어 봐!"는 프로로 활동하는 창작자에게 있어서 정말 듣기 싫은 한마디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듣지 않으면 안 될 한마디이기도 해요. 저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가와 하기 싫은 일을 하는가의 차이라고 보거든요. 여기에서 클라이언트가 하고 싶지만 나는 하기 싫은 일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내는 능력은 그 차이를 구분지을 기준 중 하나일 거예요.
예를 들어 아마추어 입장에서 영화 평론을 한다면 자기가 100번 보고 싶은 명작을 100번 보고 적확히 분석하는 게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프로라면 눈도 마주치기 싫은, 비아냥거릴 재미조차 없는 범작을 억지로 10번을 봐야만 할 거예요. 현재 시장에 필요한 업무가 있고 프로라면 그 일을 해야만 할 테니까요. 아무리 귀찮고 피곤한 업무더라도 프로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어요. 그리고 클라이언트든 대중이든 타인의 의중을 파악해 그 기대에 걸맞는 아웃풋을 내놓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 제법 중한 과제이지요.

무엇보다 창작자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충돌이나 갈등은 결과적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로건>이나 <데드풀>은 여타의 슈퍼 히어로 시리즈에 비해 적은 예산을 할당 받았기에 많은 장면에서 연출적인 타협을 해야 했지만 그렇기에 도리어 이야기에 군살없이 말끔한 작품으로 만들어지기도 했거든요. 예산이 비교적 빵빵했던 다른 <울버린> 시리즈와 <로건>의 완성도를 비교해보세요! 아니면 넷플릭스의 창작자에 대한 무한지원을 통해 만들어진 괴작들이라던가요. 돈과 제약 그리고 완성도는 정비례 관계가 아닌 강력한 증거들이지요.

얼마 전에 개봉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이런 창작자의 고민을 무척이나 잘 녹여낸 좀비영화였어요. 시놉시스까지만 설명을 드리자면 좀비영화를 찍는 촬영장에 진짜로 좀비들이 들이닥쳐 큰 혼란이 펼쳐지지만 그럼에도 촬영을 계속하려는 감독과 배우들의 갈등 정도가 이 영화의 주 내용이지요. 이후로도 다양한 갈등이 이어지기는 합니다만 그에 대해서는 부디 영화를 직접 보시면서 확인해주시길.
출처: 네이버 영화

시놉시스만 보셔도 느끼셨겠지만 이 영화는 갑이 미쳐날뛰며 온갖 과욕을 부릴 때 배우나 스텝이 느끼게 되는 공포를 고스란히 담고 있죠. 좀비한테 포위된 상황에서 감독은 자기 인생을 이 작품에 걸었다고 하며 촬영을 강행하니 좀비가 무서운지 감독이 무서운지 제작자가 무서운지 구분이 되지 않으니까요. 더욱이 이 영화는 원테이크로 촬영되는데, 하다못해 학교 장기자랑에서 춤추자고 나간 친구들도 합이 가끔은 맞지 않거늘 영화 한 편이 한 큐에 해결되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닦달 끝에, 주요인물들이 눈물 나는-또 토나오는 고통을 겪은 끝에 나온 결과물은 의외로 썩 나쁘지 않단 말이죠. 오히려 수많은 돌발상황과 억지 요구를 어떻게든 무마하고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훌륭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이 폭주에 폭주를 거듭하는 작업현장을 관찰하는 재미마저 따지면 정말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엄청난 쾌감을 약속하는 수작입니다.

물론 제작자나 기획자 그리고 갑들의 과욕이 언제나 좋은 결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그 예시로 현실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들 수도 있지만 그랬다가는 조금 문제가 커질 수 있으니-저도 먹고 살아야죠-만화 속에 나왔던 사건들을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애초에 이런 뒷담용으로 제작된 만화 속 캐릭터인 <월간순정 노자키 군>의 만화 편집자 마에노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안전한 예시가 되겠지 싶네요.​

출처: 애니플러스
저는 이 마에노라는 캐릭터의 조형을 보면서 무척 감탄했던 부분이 있어요. 그건 바로 이 캐릭터는 언제나 자기과시욕에 들떠서 만화잡지 공식 블로그에 자기 이야기를 하거나 셀카를 올리는 둥의 일을 저질렀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제가 목격했던 마에노 타입의 인물들, 그러니까 작가들을 등쳐먹으려고 시도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자의식과잉에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가 한 일만 대단하다고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했거든요.
앞서도 말했지만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하고 싶은 일만이 아니라 하기 싫은 일도 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있어요. 그리고 자기가 갑이니까 작가 혹은 실무진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은 작품 제작에 있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하기 싫은 일, 하기 어려운 일은 작가에게 떠넘기고 자기가 더 대단한 역할을 해냈다며 자부하고는 하지요. 이 사람들의 과욕은 언제나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방향보다는 자기를 얼마다 더 과시하고 자랑할 수 있느냐의 방향을 향했어요. 그러다보니 어떨 때는 좋은 결과물은커녕 오히려 작품을 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의 권력욕을 충족시키는 일에만 몰두를 하고 말지요.
이런 과욕이 지나치면 아주 황당한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해요. 마에노라는 인물은 장난처럼 보일 정도의 해프닝마저도요. 얼마 전에는 모 플랫폼의 대표가 미성년자인 작가에게 어드바이스를 몇 번 해준 것을 빌미로 자신을 원작자로 등재하는 사건마저 있었지요. 그 대표라는 사람이 어디 돈이 궁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 것은 아닐 거예요. 아마 작가라는 타이틀이 제법 폼이 나니까 그거 한 번 달아보겠다고 그랬지 않을까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한 작품이 만들어지면서 작가 한 명만이 아닌 더 많은 사람의 수고가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 수고에 의해 더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기도 하고요. 창작을 하느라 고생하기보다는 기획을 하느라 고생을 하는 게 더 보람찬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누군가의 타이틀을 지운다면, 또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수없이 갑질만 남는다면 갑질의 주인공만 즐겁고 말겠지요.
그러니 "내가 진짜 끝내주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말이야! 네가 한 번 만들어 봐!"라고 소재를 주시고픈 분들. 그 아이디어는 부디 넣어두시길. 아니면 그에 합당하는 보수와 대우를 먼저 보장해주신 다음에야 꺼내주시길. 이 자리를 빌어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dcdc가 소개하는 좋은 이야기

이관원 정우진 윤종호 연출,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아이작 아시모프, 꽁트 <원래는... (How It Happened)>
글. dcdc "그런데 <스타워즈> 시리즈는 한의학SF로 분류해도 될 것 같기는 해요."
편집. May(김미루) "'작가님 마침 제가 끝내주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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