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대담록은 공모전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준비한 콘텐츠입니다. 마블, DC 등 각종 코믹스의 전통적인 캐릭터와 숨겨진 이야기들이 아주 많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히어로물을 많이 보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대담록이 공모전에 응모할 이야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만, 모든 것을 반영하기 위해 너무 애쓰시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콘텐츠는 작은 힌트일 뿐, 이야기를 끌어가는 키는 작가님의 것이니까요!
대담자 소개
홍지운 작가
최근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 출간. <이웃집 슈퍼 히어로>, <월간주폭초인전> 의 저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웹소설 전공 교수
손지상 작가
소설가,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의 회원, 만화평론가, ‘서울 웹진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진행, <서브 컬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의 저자
권나연 평론가
슈퍼 히어로를 너무 좋아해서 업으로 삼게 된 전문가이자 평론가
안전가옥 운영멤버 Teo(스토리 PD), Remy(기획 PD)
Remy: 나연님이 말씀해 주셨던 여성 히어로 있잖아요. 망치를 뺏은 제인 포스터. 제인 포스터도 본인의 오리진 스토리나 로컬성이 있었을 텐데, 이야기에 영향을 많이 줬나요? 왠지 다 뛰어넘었을 거 같은데요.
권나연 : 제인 포스터 같은 경우는 로컬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 반대로 지구 전역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요. 애초에 마블의 주요 배경이 뉴욕이라고는 하지만 토르는 신적 존재이기 때문에 뉴욕에 발이 묶일 필요가 없거든요. 우주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각종 행성을 돌아다니는 역할이 있어요. 북구 신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불꽃 세계, 얼음 세계 그런 곳들을 다 돌아다니죠. 아까 로컬성에 반대되는 경우가 있지 않냐고 물었을 때, 생각난 것이 토르, 제인 포스터 였어요.
Jane Foster in Thor (출처: imdb.com)
Teo: 하긴 ‘스페이스 오페라’가 기반인 작품들은 로컬적 히어로 이야기에서 제외해야 할 것 같기는 하네요.
손지상: 뿌리를 SF에 둔 펄프 픽션으로, 당시의 스페이스 오페라가 있었어요. 블랙홀이라는 게 아직 이론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시절에 블랙홀을 등장시킨다거나 다른 행성에 생물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그리고 그 옆에는 서커스 달에서 차력을 보이는 프로레슬러와 차력사들의 초인적인 이미지가 있었어요. 그러니깐 ‘서커스단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라는 감각인데, 이 부분이 로컬성이 발생하는 뿌리인 거 같아요. SF에서 탄생해온 SF적인 이미지로 탄생해온 슈퍼 히어로들은 기본적으로 로컬성이 아니라 본인 그 자체가 히어로인거죠. 로컬을 굳이 따지자면 우주선 안이라던가.
Remy: 유니버셜 형이네요.
손지상 : 네, 유니버셜 형인거죠. 고향 별 같은 기점은 있되, 거기는 어디까지나 기지인 거고, 파견을 나가는 거에요. 스타트렉 처럼. 다른 지역으로 왔다갔다 이동을 하는 게 스페이스 오페라의 기본적인 특징이니까요. 이런 경우에는 로컬성을 강조하지 않는 이유가 우주가 배경이기 때문에 애초에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에요. 다른 이야기들에서 로컬성을 강조한 이유는 그 지역 사는 사람들한테 일상 속에 비일상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서죠.
Teo: 이제 한국형 이야기를 해볼까요? 한국에 있는 신화, 설화, 민담을 바탕으로 슈퍼 히어로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이야기도 있을까요? 북유럽 신화에서 토르가 나왔듯이 다른 신화도 활용가능하지 않을까요?
Remy: 제주 할망신화, 이 신화에서 진짜 멋있는 여성 히어로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손지상: 단편으로 나왔던 거 같아요.
Teo: 혹시 한국 설화 중에 초능력을 다루는 이야기의 단초가 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홍지운: 사실 제일 영화상으로 근접했던 것은 <전우치>였다고 생각해요.
손지상: 이렇게 민담에서 이야기가 나오는 방식은 마블 방식이에요. 마블은 기본 구조가 민담에 가깝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단군왕검’으로 히어로를 만들겠다면 DC 방식이 맞아요.
단군왕검이 다시 이 세계에 와서 ‘내가 나라 터 잡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까 영 엉망이다.’라는 식으로 와서 히어로 활동을 한다면 미세먼지를 막아줄 수 있잖아요.
중국에도 그런 거 많아요. 황제에 대응하는 치우라는 인물이 있었달지. 중국이 먼지를 일으켜서 한반도를 쓸어버리려고 했는데 그거를 막아냈다는 식의 스토리라면 DC에 가까워요.
우수리 장군처럼 날개를 달고 태어나서 죽었다는, 엑스맨 같은 스토리 라인도 가능하겠네요. 이 아이가 자라면서 겪는 이야기는 아마도 마블에 더 가까울 거라는 거죠. ‘쟤는 등에 혹이 있나. 교복이 맨날 튀어나와 있어?’, ‘내가 어릴 때 다쳐 가지고 여기에 뼈가 튀어나왔거든.’ 같은 거짓말을 하는데, 친하게 지내던 애가 이지메를 당해서 옥상에서 떨어지려고 할 때쯤 자기가 어쩔 수 없이 힘을 발휘해서 떨어지는 애를 잡아주되 애들한테 들켜서 다른 데로 전학가게 되는 스토리는 마블 스타일이죠.
Remy: 특히 한국형 히어로가 어떤 요소를 갖추면 좋을지 팁을 많이 주셨지만, 밀레니얼 독자를 전제하고 생각하면 이미 단군왕검 이야기보다 마블에 익숙할 것 같아요. 지금의 독자나 관객들이 소비하고 있는 것들은 헐리우드나 넷플릭스인데, 억지로 전우치나 홍길동을 끌어 오는 게 맞을지 고민이 되네요. 물론 우리의 역사성을 바탕으로 한 슈퍼 히어로를 현대식으로 잘 변주하면 좋겠는데, 그게 능숙치 않아서 촌스러워 보일 때가 있잖아요. 이런 우려 때문에 로컬성보다는 글로벌성 혹은 글로컬성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손지상 : 지금 말씀하신 부분을 홍지운 작가님과 제가 2년 내내 떠들고 있어요. 저희끼리만. ‘아니, 왜 나라에서 문화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데 돈을 쓰냐고. 그거 해서 아무도 모르는데, 그걸로 만들면 무슨 의미가 있어.’라는 이야기를 2년째 하고 있거든요.
Remy: 이번 공모전에서도 이런 점을 잘 녹인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손지상: 공모전에 도전하실 분들에게 팁으로 드릴 말씀은, 그런 지역성이나 역사성을 히어로가 아니라 빌런의 설정으로 쓰면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만큼 한국적인게 적으로 나타나는 나라가 없거든요.
마블 속 여성히어로
Remy: 나연님, 아까 왜 여성 히어로가 마블에서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이번 공모전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는다면 스파이더맨의 메리제인 같은 류도 있을 것이고, 토르의 망치를 뺏은 제인 포스터 같은 류도 있을 수 있을텐데. 여성 히어로의 또 다른 타입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권나연 : 지금 이미 있는 대표적인 캐릭터로서는 4명 정도 꼽을 수 있는데, 전부 다 한국인 여성이에요. 마블에서 등장하죠. 일단 한 명은 피터 파커가 물렸던 방사능 거미가 있잖아요. 똑같은 거미에 물린 여성 캐릭터가 있어요. 그래서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 캐릭터가 자기 능력을 제어하지 못해서 오랫동안 10년 동안 벙커에 갇혀 지냈어요. 다른 주변 환경과 유리된 독자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가 이제 막 나와 가지고 타임캡슐을 열고 나온 듯 하죠. 잃어버린 어머니, 아버지, 동생을 찾아다니고. 이 디지털 세상에 혼자만 아날로그로 남아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여성 캐릭터가 한 명 있고요. 이 캐릭터가 이름이 실크네요.
그리고 다른 한 명은 2013년쯤, 다음 웹툰에서 콜라보 해서 나온 캐릭터인데, ‘화이트 폭스’가 있어요. 화이트 폭스는 한국에 남은 마지막 구미호에요. 이 캐릭터는 저도 한국인이지만 몰랐던 사실을 이야기 하는데요, 구미호의 천적 중에 ‘삼족구’라는 괴물이 있대요. 삼족구라는 괴물이 다리가 3개인 개인데, 구미호를 잡아먹는다고 해요. 구미호라는 종족은 사실 그렇게 나쁜 건 아닌데 나쁘다고 알려져 있고. 그리고 삼족구라는 괴물은 그 실력으로 성수동인가 어딘가에서 조폭으로 활동하고 있고. 이 삼족구라는 괴물이 인간으로 변해서 구미호를 잡아먹는 그런 느낌인 거예요.
화이트 폭스는 한국에 남은 마지막 구미호로서 삼족구를 피해 은밀하게 도망치고, 숨어 다녀야 해요. 그렇지만 조폭이 같은 반 친구를 괴롭히고 납치하는 바람에 자기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직접 맞서야 돼요. 그런 식으로 오리진이 돼서, 나중에는 국정원 요원까지 오르고 어벤저스와 연대하고, 활동하는 슈퍼 스파이. 그런 캐릭터에요.
이 캐릭터 같은 경우에는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성도 굉장히 절묘하게 가미해서 구미호가 다쳤을 때, 이 상처를 회복하려면 여우 구슬이 있어야 하는데, 이 여우 구슬이라는 유물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뺏겼기 때문에 일본에 직접 찾아가서 가져오는 것도 하나의 모험이죠. 이런 식으로 역사성을 잘 가미된 여성 슈퍼 히어로 스토리도 있어요.
Remy: ‘화이트 폭스’는 오리진 스토리가 현대와 굉장히 잘 결합됐네요.
권나연: 이 이야기를 쓴 작가가 한국계 미국인 이래요.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게임 오리지널 캐릭터인데. 넷마블에 <마블 퓨처 파이트>라는 게임이 있어요. 그 게임에서 오리지널 한국인 제작진들이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캐릭터인데. 한 명은 아이돌인 ‘루나 스노우’라는 캐릭터인데. 케이팝 아이돌이 배경인 컨셉인 캐릭터이고요, 한 명은 ‘단비 크레센트’, 태권도 소녀에요. 집에 있는 하회탈 같은 거 있잖아요. 하회탈 같은 신비의 유물을 우연히 얻어 가지고, 그 탈을 쓰면 신비한 곰을 소환시켜서 같이 싸워요.
이미 슈퍼 히어로 산업이 미국 중심이고, 백인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 중심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좋은 선례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참고할 만한 것들은 많이 있으니까, 자료 삼아서 창작 활동에 좀 더 다양하게 활용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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