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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히어로와 오리진 스토리에 대하여

주요 토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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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만족
크루
본 대담록은 공모전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준비한 콘텐츠입니다. 마블, DC 등 각종 코믹스의 전통적인 캐릭터와 숨겨진 이야기들이 아주 많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히어로물을 많이 보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대담록이 공모전에 응모할 이야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만, 모든 것을 반영하기 위해 너무 애쓰시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콘텐츠는 작은 힌트일 뿐, 이야기를 끌어가는 키는 작가님의 것이니까요!
대담자 소개 홍지운 작가 최근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 출간. <이웃집 슈퍼 히어로>, <월간주폭초인전> 의 저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웹소설 전공 교수 손지상 작가 소설가,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의 회원, 만화평론가, ‘서울 웹진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진행, <서브 컬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의 저자 권나연 평론가 슈퍼 히어로를 너무 좋아해서 업으로 삼게 된 전문가이자 평론가 안전가옥 운영멤버 Teo(스토리 PD), Remy(기획 PD)
손지상: 글쓰는 사람들을 위해서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슈퍼 히어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리진 스토리라고 생각해요.
오리진 스토리에서 이 사람이 뭘 하는 사람인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 어떤 윤리관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히어로로서의 권위가 다 나오거든요. 제가 피터 파커의 오리진 스토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피터 파커는 처음 능력을 얻었을 때 바로 히어로로 각성하지 않아요. 일단 그 능력으로 진기명기 쇼 같은데 나가죠. 토비 맥과이어가 옛날에 나왔던 영화에서는 프로 레슬러가 되어서 초능력의 힘으로 상금을 벌어서 그걸로 공부하죠. 유명인이 먼저 되는거에요.
홍지운: 피터 파커는 정확히 번 돈으로 메리 제인을 뒤에 태울 수 있는 멋진 차를 갖고 싶어했어요.
손지상: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그러다가 지나가는 강도가 벤 삼촌을 죽인 범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죠. 나중에 진기명기 쇼에 나가서 부족한 돈을 버는데, 뭐라고 불러야 되나? 편집장 양반이 TV평론가에요. 그래서 자기 신문에다가 저 놈 사기꾼이라고 써서 방송에 못 나가게 되니깐 돈을 벌기 위해 자기는 스파이더맨의 친구라고 하면서 자기 카메라로 자신을 찍어서 그걸로 먹고 살거든요.
편집장이 사진을 사주는 이유는 자기를 너무 싫어하는 상사가 사실은 ‘너 진짜 최고다. 요놈을 죽일 수 있는 적절한 증거만 가지고 오면 내가 너를 정직원으로 뽑아준다.’ 이런 식이란 말이죠.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부조리 즉 모순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의 일상 감각과 그걸 해결하는 방식이 일상적인 면과 비일상적인 면이 동시에 있기 때문에 ‘피터 파커’라는 캐릭터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소년 주인공이었던 것도 의미가 있고요. 어른들이나 하는 행동이 아니라 사춘기 소년이 겪는 일에 걸쳐있는 인물이잖아요.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 그리고 사회인이 된 후에도 사회인으로서 해야할 책무와 히어로로서 해야할 책무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게 되는 게 스파이더맨 이야기의 중요한 축 중 하나거든요. 이것처럼 오리진 스토리 안에 이 사람이 마이너리티로서 가지고 있는 부조리가 부각되는거죠.
Remy: 슈퍼 히어로 설정의 3가지 필수 조건 중에 히어로가 행하는 행위의 결과 자체가 선한 결과를 낳으면 된다면 의도는 사실 덜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어로의 오리진 스토리는 중요하다는 말씀이잖아요.
손지상: 거기서도 선한 의도가 있어야 된다는 거죠. 안 그러면 빌런의 오리진 스토리가 되니깐.
Remy: 이런 오리진 스토리가 특별한 다른 캐릭터들이 있나요? 홍지운 작가님도 지금까지 우리 일상에 있을 법한 초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쓰셨는데, 그 때는 어떻게 오리진 스토리를 구상하셨어요?
홍지운: 제 작품 이야기보다는 히어로들의 초능력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대리만족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높은 빌딩에 올라가면 ‘떨어지면 어떡하지?’ 생각하잖아요. 스파이더맨은 떨어지면 어떡하지를 너무나도 시원한 쾌감으로 대리만족을 시켜주죠. 아이언맨 같은 경우에도 ‘나도 시계 멋진 거, 비싼 거 차고 싶어. 자동차 진짜 비싼 거 타고, 시원하게 도로를 활주하고 싶어.’ 하는 누구나 가질 법한 형태의 욕망을 들어주고 있고요.
손지상: 요즘 작품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꾸 조선족 동포를 악역으로 소비하는 거에요. 조선족이기 때문에 새터민이기 때문에 슈퍼 히어로가 된다는 이야기가 오히려 지금 이야기에 맞아 떨어지는 것이죠.
Teo: 다문화 가정은 어떨까요?
손지상: 다문화 가정도 좋죠. 오히려 마블스러운 영웅이 나오기 딱 좋은거죠. DC같은 영웅. 슈퍼맨 같은 경우에는 원래 외계인이잖아요. 지구에 이주해온 이민자란 말이에요. 그것도 여러 가지가 많거든요. 원래는 아직 배양단계로 보내가지고 미국에서 아기가 됐기 때문에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인이라는 스토리 라인도 있었어요.
제가 이 이야기를 왜 꺼내냐면 교포들이 슈퍼 히어로의 정체성을 갖기 좋다는 거에요. 지금 2세라면 조선족 이주2세로 산다면 자기는 완벽하게 남한 사투리 쓰고 이 쪽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지만 자기 아이덴티티의 뿌리는 외부에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런 아이가 만약에 주변에 다문화 가정에서 따돌림 당하는 애를 <완득이>처럼 복싱을 배워서 구할 수도 있고, 우연한 계기에 작은 초능력을 얻어서 그걸로 지켜 줄 수도 있는거죠. 그렇게 되면 충분히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이야기가 되는 거죠.
홍지운: 손지상 작가가 이야기한 슈퍼 히어로 이야기를 일본에 가져가면 뭐가 나오는지 아세요? 드래곤볼이 나옵니다.
손지상: 진짜요. 왜냐하면 슈퍼맨하고 똑같아요.
홍지운: 우주선을 타고 보내진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지구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상냥함을 깨닫고, 우주의 평화를 지킨다는 거죠.
손지상: 그리고 슈퍼 파워를 이용해서 이긴다는 거죠.
홍지운: 그래서 드래곤볼을 미국으로 다시 역수입하면 뭐가 나오느냐?
손지상: 블랙팬서!

슈퍼 히어로와 친구들

Remy: 요즘 영웅들은 다 크루인거 같아요. 나 혼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도와주거나 약한 이들끼리 더 뭉치면서 연대감을 느끼잖아요. 드래곤볼의 등장인물들도 다 친구고요. 히어로마다 본인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식은 어떻게 차이가 있을까요?
아까의 이야기에 이어서, 만약 한국에서 만약 슈퍼 히어로가 등장한다면 가리봉동처럼 조선족이 많이 있는 곳에서 오리진 스토리가 탄생 될 확률이 높고, 우연히 초능력을 획득해서 연대감을 얻을 때 그 구역 또래 세대하고만 친구가 되어야 할까요? 외부의 파트너들과 친구가 되어야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요?
손지상: DC는 그런 식이에요. 배트맨은 고담에서만 활동하지 매트로폴리스로 가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슈퍼 히어로는 마이너리티를 다루지 않고 힘쎄고 잘난 것에만 눈이 팔리면, 본질에서 벗어난다는 거에요.
원래 약하고, 사람들한테 구두쇠라고 욕을 먹던 유대인들이 서로 정체를 숨겨야되지만 서로 연대하고 그것만으로 유대인만 잘 먹고, 잘 살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이롭게 하려고 힘을 합쳐서 평화를 이룩하겠다는 식의 이상을 만화로 표현한 것이 슈퍼맨이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슈퍼맨이 꼭 미국을 위해서만 싸우지도 않고 전 인류를 위해서 봉사한다는 거죠.
이런게 DC 스타일이라면 다문화 가정이나 교포2세지만 단순히 조선족만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히어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평등해지고, 편견이 없어지게끔 싸우는 히어로가 한국형 디씨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마블은 좀 달라요. 스토리 라인 자체가 다양하거든요. 스파이더맨도 대부분 뉴욕에서 활동해요. 슈퍼 히어로물의 가장 큰 오해 중의 하나는, 슈퍼 히어로는 전 세계를 돌아다닐 것 같다는 것이죠. 들여다보면 철저히 로컬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적인 규모의 이야기를 하려고 <저스티스 리그>같은 것도 만들고 해서 통합하게 하려는 구도로 추후에 나온 거죠. 원래 히어로는 그 지역, 출판업계, 로컬 커뮤니티 안에서 인기를 얻기 때문에.
홍지운: 마블의 히어로들은 약간 슈퍼스타들의 느낌이 있어요. 너의 출신이 어디인지 잊지마, 네가 어떤 동네에서 자랐고, 누가 너희 형제들을 지켰는지 기억해. 이런 이야기를 히어로 스스로도 하고, 남에게도 듣죠. 로컬성, 지역문화성을 매우 잘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에서 “브루클린!” 이라고 외치는 장면이나 캡틴 아메리카와 스파이더맨이 “너 어디 출신이냐?”, “브루클린” 이라고 대화하는 장면은 상상 이상으로 더 깊은 의미의 장면이었다고 생각해요.
손지상: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로컬성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원래부터 우리나라는 중앙 통제로 전국구가 하나로 돌아가는 편인데, 옆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지역 스타가 있고, 지역 방송에 지역 아이돌이 있죠. 얘네들이 전국구 스타보다 인기가 없느냐? 아니에요. 지역에서는 인기가 오히려 더 높아요. 미국도 마찬가지죠. 이스트사이드나 뉴욕이니, 웨스트 코스트니,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자기 세계에요. 그 사람들의 시야가 좁다기보다, 일상 감각이나 생활 감각이 ‘아니, 지금 내 눈앞에 LA에서 문제가 터졌는데 왜 뉴욕 문제까지 신경을 써야 해?’ 이런 식이에요. 땅이 워낙에 넓으니까. 그런 로컬성이 슈퍼 히어로의 이야기에도 반영 되어 있다는 것이죠.
Remy: 지금까지의 대화를 통해 슈퍼 히어로의 오리진 스토리는 로컬성을 띄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생기네요. 그걸 벗어난 이야기는 없어요? 이야기를 만드시는 분들이 로컬성, 히어로의 출신배경을 참고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 공식에서 벗어난 이야기도 있지 않을까요?
손지상: 그런 사실이 지금 이 공모전의 현실적인 힌트가 될 수 있죠. 한국은 그렇게까지 지역, 로컬 사회가 깊지가 않다. 그러니 한국에서 굳이 슈퍼 히어로를 만들 때, 지역성을 강조하는 히어로를 만들면 일상 감각에서 어긋날 것이라는 거죠.
홍지운: 20~30년 전이었으면 지역색을 강하게 해도 괜찮았을 것 같아요. 지금이라면 아마….
손지상: 일본 어디 출신의 호빵맨처럼,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감자맨!’ 이럴 수는 있는데 굳이 강원도에서 활동할 필요는 없다는 것에요.
홍지운: 제주도에도 감자가 나오고 있고요.
손지상: 우리나라도 그렇게 크지 않아서 지역색이 그렇게까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리진 스토리에서 지역성이 반영되더라도, 스파이더맨처럼 뉴욕에 한정되거나, 홍대만 지킨다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슈퍼 히어로야? 동네 히어로지!’ 이렇게 될 거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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